나의 정원에서 꽃이 핀다면
벌써 캐나다에 온 지 2주가 다 되어간다. 오리엔테이션에, 시차적응에 이것저것 나름대로 바쁜 일상을 보내느라 이제야 처음으로 둘이서 동네 산책에 나섰다. 한국에선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주택 살이에 로망이 늘 있었던 터라 집집마다 다르게 꾸며진 정원들을 하나둘 살펴보며 천천히 걸었다. 캐나다의 기후가 우리나라와 완전히 다른데도 생각보다 비슷한 식물이 많았다. 그러던 중 어느 집 정원 앞에 서서 백일홍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집주인아저씨께서 오시더니 가위로 톡톡 꽃 두 송이를 잘라서 건네주셨다. 덤으로 씨앗이 가득한 마른 백일홍 꽃을 주며 내년 봄에 심으면 꽃이 예쁘게 필 거라고.
시들어가는 백일홍 틈에서 가장 예쁘고 활짝 핀 꽃 두 송이를 골라 잘라준 아저씨의 따스함이 전해져 내 마음에도 꽃이 폈다. 먼 미래의 주택 살이를 상상하며 내 정원엔 어떤 꽃들을 심어볼까 생각해 본 적은 많았지만 그 꽃들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건네줘야지 하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좋은 것, 예쁜 것을 혼자서 품고 있으면 기쁨을 혼자 느끼지만 조금만 누군가에게 나눠주어도 기쁨이 커진다는 걸. 늘 아이들에게 말해왔고, 어려서부터 들어왔던 그 말이 진심으로 다가왔다.
집에 돌아와 찾아본 백일홍(zinnia)의 꽃말은 ‘인연’. 첫 동네 산책의 인연이 준 선물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사진만 찍어두곤 한참 브런치에 글을 못 썼다. 머릿속엔 초록이들을 보며 떠오르는 글감이 꽤 있는데 책상 앞에 앉아 정리하려면 왜 이렇게 큰 결심이 필요한지.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은 순식간에 늘어갔다. ‘글을 써야 한다’는 마음이 그동안 나도 모르게 하나의 숙제이자 스트레스가 되었을까? 이곳에선 조금 더 여유가 있으니 그동안 정리하지 못했던 마음을 조금씩 들여다보려고 한다.
여기서 느끼는 마음을 어떻게 묶어낼까 고민하다 ‘탐험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당분간은 꿈행성과 함께도 아니고 식집사 역할도 못하지만 밖에서 초록이들을 만나며 떠오르는 마음을 기록해 보기로. 세상 모든 곳에는 자라나는 초록이들이 있고 이를 지켜보며 지난 2주간 꽤나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움직임이 활발한 봄, 여름에 초록이들을 보는 것을 더 좋아했는데 가을에서 겨울로 쉼을 향해 가는 녀석들을 들여다보며 숨 고르는 법도 배워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