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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행성식집사 Oct 02. 2023

[탐험가 이야기] 물들어가는 단풍잎을 보며

실패의 날에도, 성공의 날에도 물들어 가는 중

국기에도 떡하니 단풍잎이 가운데 크게 그려져 있는 ‘단풍국’ 캐나다에서 가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복 받은 일이다. 9월 중순에 캐나다에 도착했는데 그때만 해도 초록빛이던 잎들이 2주가 지나자 조금씩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집에서 일어나면 식물을 관찰하던 루틴 대신 이곳에선 창밖을 바라본다. 매일 조금씩 붉어가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창문 안이 가을의 색으로 가득 찰 순간을 상상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한국의 우리 집 주변엔 가을이 되어도 색이 변하는 나무가 딱히 없기도 하고, 2학기는 언제나 쏜살 같이 흘러갔기에 10월엔 어느새 낙엽이 져서 아쉬워했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서른 번이 넘게 찾아왔던 지난가을 동안 나무 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본 적은 아마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을까? 그동안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더해져 이 나무, 저 나무를 더욱 찬찬히 살펴보았다. 꼭대기부터 붉게 물들어가고 있는 녀석, 뜬금없이 옆구리부터 노랗게 변하고 있는 녀석. 단풍잎은 테두리부터 서서히 붉어지며 가운데로 그 기운이 차오르고 있었다.


각자의 속도로 물들어가는 단풍잎을 보며 왜 이 녀석은 빨리 물들어 시드는지, 왜 이 녀석은 늦게 물드는지 걱정하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멀리서 바라보면 물든 것, 물들어가는 것, 이미 물든 것이 모여 조화를 이루고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물들어가는 것에 ‘제때’라는 것이 과연 필요할까, 어쩌면 나도 각자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을 나만의 기준으로 판단하느라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나 또한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제때에, 잘 물들어가기 위해 스스로를 너무 채찍질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오늘은 이른바 ‘실패’의 날이었다. 베이글을 사고 나와 시내로 가는 버스를 바로 눈앞에서 놓쳤고, 도서관에서 받으려던 아트패스는 누군가 먼저 빌려가 버렸으며, 오래도록 가고 싶어 했던 카페에는 자리가 하나도 없어서 나와야 했다. 돌아가는 만원 버스에선 급정거로 부딪혔고, 카페에선 주문을 잘못하여 음료를 반이나 남기곤 버려버렸다. 대중교통이 썩 좋지 않은 이곳인지라 꽤나 먼 거리를 결심하고 떠나야 했기에 아침부터 나름 꼼꼼히 계획을 세웠는데 하루종일 뜻대로 되는 것이 없어 화가 나는 그런 하루였다.


그 기분에 괜히 툴툴 대다 버스 정류장에서 물들어가는 단풍나무를 보며 평온을 되찾았다. 수많은 단풍잎도 각자의 속도에 맞게 서서히 변해가고 있는데 하루의 작은 일 하나쯤 잘 안 된 것 훌훌 털어버리자고. 마음먹고 밖에 나온 덕에, 다시 버스를 기다리며 나무를 보았고 위안을 얻었다. 실패의 날이든, 성공의 날이든 결국 멀리서 보면 나를 붉게 물들어가게 하는 좋은 날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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