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잎들아 힘내!
예상치 못한 가을 이상 기온으로 생각보다 따뜻한 10월을 보내고 있다. 추위를 잘 견디지 못하는 나로서는 기온이 늦게 떨어지는 게 좋은 것도 같지만 10월 초까지 20도를 웃돌다 갑자기 훅 10도로 기온이 떨어진 것이 몸에 무리가 되었는지 지독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몸이 안 좋으니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졌다. 아픈 몸을 이끌고 다닌 지도 어언 2주째, 언제면 물드나 싶던 잎들이 어느새 알록달록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몸이 아프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단풍이 어느새 가득하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떨어져 버릴 이 단풍을 더 즐기러 가기엔 썩 기운이 없었다.
다행히 며칠 전 급히 사 먹은 약이 꽤나 효과가 있었고 몸에 기운이 도니 요즘엔 아쉬운 마음에 출근길에라도 이 나무들의 변화를 찬찬히 눈에 담고 있다.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면 역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데 그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리도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널 때다. 언제부터인지 아침인데도 강변으로 가로등이 켜져 있는데 불빛이 강물을 비추는 모습을 보다 보면 이른 아침 들이마신 찬 공기가 포근함으로 바뀐다. 그 강변을 주르륵 늘어선 나무에 눈을 하나씩 옮기다 보면 어느새 저 멀리 예쁜 성 같은 샤또 로리에까지 눈길이 닿는다. 고작 1~2분 정도지만 매일 다리 위에 서서 지긋이 풍경을 보다 보면 절로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며칠 전 출근길에 만난 동료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며 다리 위를 지나다 잠깐 멈춰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 물었다. 나에겐 며칠 간의 아침 일과였는데 선생님은 매일 이 길을 지나지만 멈춰 서서 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답했다. 나 또한 한국에서 출근할 때면 아침 활동부터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걸음을 재촉하느라 주변으로 눈을 돌릴 새가 없었던 것 같다. 때때로 하늘이 맑고 예쁜 날이면 알림장에 ‘집에 가는 길에 예쁜 하늘, 꽃, 동물 눈에 담기’라는 소박한 숙제를 써주곤 하면서도 정작 나에게는 잠깐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었다.
매년 돌아오는 같은 계절일지라도 매년 그 시기, 모습, 색이 다 다른 풍경들. 어쩌면 잠깐 보고 스칠 뿐 오래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매일 2분의 시간을 눈에 담는다면 1년 안엔 꽤 많은 색과 풍경들이 마음에 담기지 않을까 싶다. 당분간 계속 비가 내린다고 한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으며 이 예쁜 풍경을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게 이파리들이 빗방울과 바람을 조금만 더 버텨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