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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폭력

by 두두 Mar 20. 2025

길을 걷는데
인도의 보도블록 위로 바퀴벌레 한 마리가
허겁지겁 허둥지둥 뛰어간다

행인들의 무심한 한걸음에
금방이라도 밟혀 죽을지도 모를
가냘픈 흑갈색 생명체

바퀴벌레를 정말 싫어하지만
차마 도저히 밟지는 못하겠다
다행히 살아서 하수구 맨홀 구멍으로 사라지는
녀석을 보니 왠지 가슴이 뭉클하다

바퀴벌레를 만나지 않기 위해
집안을 깨끗하게 유지한다
바퀴벌레 한 마리가 나오면
녀석을 집 밖으로 몰아내기 위해
한참을 고생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그들을 마구 죽였다
쉽게 쉽게 밟아 죽이고 때려죽였다
그들을 죽이는 데 일말의 찜찜함도 없었다

본격적으로 이 아수라 세상에 뛰어든 후
이곳저곳에서 밟히고 짓뭉개지며 살았다
대학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시장에서 직장에서
백화점에서 주유소에서 급식소에서 군대에서
약자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생생하게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징그럽게 생긴 꼽등이가 발 언저리에
있는 걸 보고 기겁을 하며
묵직한 물컵으로 덮어 녀석을
그 안에 가두어버렸다
그리곤 그 사실을 잠시 잊었다

며칠 후 거꾸로 뒤집혀 있는
물컵을 보고 감금된 꼽등이가 생각났다
살며시 컵을 들어 확인해 보았다
꼽등이는 온몸이 축 처진 채 죽어 있었다
아마도 나 때문에 굶어 죽은 모양이었다

내가 만약 꼽등이였다면
꼽등이 판사는 내게 감금치사죄의 죄목을
적용해 징역형을 선고했을지도 모른다

기분이 묘했다
찜찜했다

살아있던 것이 내 손에 의해 죽었다
내가 살아있던 것을 죽였다

또 다른 어떤 날,
도서관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팔뚝이 따끔해서 쳐다보니
까만 개미 한 마리가 내 팔뚝 위를
기어 다니고 있었다
조금 큰 개미였다

나는 신경질이 나서 녀석을
집게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개미가 내 팔뚝 위에서 버둥거렸다

더듬이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조금씩 죽어갔다
난 마치 소시오패스처럼 죽어가는 녀석을
들어 올려 눈앞에 바짝 가져다 대고 한참 관찰했다

녀석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버둥거리는 다리, 힘없이 흐느적거리는 더듬이
왠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녀석의 눈
그때 느꼈던 설명할 수 없는 그 기분

방금까지 살아 움직이던 것을
내가 죽였다
내 작은 힘에도 작은 것들은 속절없이 죽었다

몸서리를 쳤다
살인자와 내가 다를 게 무엇일까?
내가 만약 개미나 꼽등이의 입장이라면?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개미, 꼽등이, 바퀴벌레 등
작고 연약한 존재를 함부로 죽이는 것

두 개의 행위는
정말 질적으로 다른 행위일까?

그 후로 도저히 작은 것들을 죽일 수가 없었다

화창한 가을날, 즐겁게 성큼성큼 길을 걷다가도
개미들이 보이면 한참을 뒤뚱거리며 걷는다
한 마리라도 밟지 않기 위해서

땅을 보며 걷는다
달팽이, 지렁이를 밟지 않기 위해

모기를 직접 손으로 때려잡지 않는다
약도 뿌리지 않는다
대신 거미를 키운다

오늘,
도서관 열람실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
작은 개미 한 마리가 출현했다

녀석을 한참 바라본다
눈앞을 왔다 갔다 하며
배회하는 녀석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혹시라도 내 작은 움직임에
녀석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내 자리로 탐험을 나온 개미 한 마리를
바라보다가 떠오른 생각을 끄적인 것이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아마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참으로 많은 생명을 죽이며 살아왔을 것이다

인간은 순진무구를 선택할 수 없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우리보다 작은 것들 우리보다 약한 것들
우리보다 연약하고 무력한 것들을 늘 파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식물도 생물이며 동물도 생물이다
생물은 살아있는 유기체를 말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 반드시
살아있는 다른 것들을 파괴해야만 살 수 있다


근본적으로 뒤틀리고 왜곡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는 타인들의 불행을 밑거름 삼아  

내 이기적 행복과 평안을 바라며 살 수밖에 없다

폭력이 없는 완전무결한
순진무구의 세상 속에서 사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 당장 목숨을 끊어버리지 않는 한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지향해야 하는 삶은 최소 폭력의 삶이다

채식주의자들을 존중한다
채식 위주로 식사를 하는
스님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한다
최소 폭력을 위해 채소 위주로 식사하는
그들을 존경하고 존중한다

고기를 좋아하는 육식 동물인 나는
죄스럽게도 비록 잡식의 습성을
죽을 때까지 포기할 수 없겠지만

과식과 포식, 미식과 탐식을 자제하고
소박한 식단으로 하루 두 끼를 먹다가

나중에 더 늙은 후
하루 한 끼만 먹고 살아갈 수 있다면,
쓸데없는 소비를 줄이고 주변을 살피며 걷고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며 살아간다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자본주의적 삶이 초래하는

생명 파괴와 환경 파괴에 대해

끊임없이 반대 의견을 피력하면서 산다면

조금이라도 미래의 후손들에게 죄를 덜 지으며
살다가 죽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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