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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말

by 인간 Feb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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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나에게 길을 묻는
전혀 다른 느낌의 두 어른에게
길을 가르쳐 준 경험이 있다

한 인간은 대뜸 나에게
반말로 길을 물었다
불쾌함과 분노가 치솟아 올랐지만
너절한 한국 유교문화의 암묵적인
강요를 이겨내지 못한 나는 시큰둥하게
존댓말로 길을 가르쳐 주었다

또 다른 어른은 어린 나에게
깍듯하게 존댓말로 길을 물었다

기분이 좋아서 정말 친절하고 상냥하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때 다짐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후자의 어른이 되자고

그때 이후 지금까지
(부끄러운 과거인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나보다 어린 타인에게 함부로 반말을 하거나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내뱉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내게 길을 물었을 때도
그들에게 반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너절한 나라에 살면서
반말 때문에 빡친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반말을 하려면 모두 반말을 하고
존댓말을 하려면 모두 존댓말을 하는
사회 문화를 확립하면 어떨까?

장유유서?
하하하하하!!!
같잖은 유교 문화!

나이가 많은 인간이면
설령 개저씨나 개줌마라도
존댓말로 응대해 줘야만 할까?

참 한심하고 너절한 문화다

이 나라에 살면서 참으로 자주 경험했던
자기 편의주의적 장유유서

처음 본 젊은 사람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지껄이는 나이 든 인간들을 보면
짜증과 한심함 그리고 한없는 경멸이
치솟아 오른다

그놈의 주둥아리를
딱 한 대만 때려주고 싶다는
아주 강력한 열망이 샘솟아 오른다

특히 부산은 더 심한 것 같다
살아본 적이 없어서
서울 경기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정신적으로 훨씬 더 후질 거라고 추측할 수 있는
이 고장의 인간들은 사고회로가 고장이 나서
자기에게 유리한 장유유서는 잘 알지만
역지사지는 잘 모른다

단언컨대 대가리가 나빠서 그렇다

자신에게 유리한 장유유서만 집요하게 고집할 뿐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는 유교의 가르침,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하지 말라고 가르친
공자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나는 반말하는 걸 싫어한다
같은 나이가 아닌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된다면 특히 더 그렇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반말을 사용하고
나이가 어린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존댓말을 사용해야 한다
가까워지기 전,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던 때에는
하지 못했던 말도 반말을 하게 되면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하게 되고, 말을 지껄이기 전에 뇌의 필터링을
거치는 고도의 사고 작용이 정지한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함부로 말을 내뱉는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상대적으로 위축이 된다

개소리라도 그냥 참고 있어야만 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반말과 존댓말을 통해 자연스럽게 위계질서를 학습하고
사회적 서열이 무의식적으로 서로에게
각인되고 또한 부지불식간에 강요되기 때문이다

이 나라 전반에 걸쳐 질척하게 흐르는
권위주의와 전체주의 그리고 서열주의의
핵심 원인들 중 하나가 바로 존댓말 문화다


언어를 통해 사회적 위계와 서열을 반복 학습하는 것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나이 많은 인간들의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사고와 행동 양식에 대해
대놓고 비판을 하려고 해도
그 비판의 수단은 존댓말이어야 한다
반말이나 다소 거친 말을 사용하는 순간
나이 많은 인간은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그 사실에 집중하게 되고 대화나 토론은
논점을 벗어나 감정적으로 흐른다
 
나이가 많은 쪽은 나이가 어린 쪽을
손쉽게 반말로 제압할 수 있다

반말을 한다는 건
상대에 대한 조심성을 버려도 됨을 의미한다
상대를 대할 때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배려나 존중 그리고 신중함을 망각해도 됨을 의미한다

인간의 사고와 행위는 반드시
언어의 영향을 받는다

살면서 수없이 경험한 사례를 통해
내 생각을 입증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던 때에는
선을 넘는 언행을 하지 않았던 인간이
반말을 허용한 이후부터는 예전보다
더 무례하고 공격적인 언행을 하는 걸
참으로 많이 경험했다

언어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한국이란 나라에서

권위주의와 서열주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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