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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side up Oct 17. 2023

이탈리앙의 찐 여유

프랑스 몽펠리에 - 나딜




'Nadil'은 길고 풍성한 속눈썹과 큰 눈을 가진 이탈리아 친구다. 사슴 같은 눈망울, 두툼한 입술, 둥근 곡선이 이어진 큰 코, 곱슬머리와 수염까지.

프랑스 몽펠리에 어학원에서 처음 만난 그는 정말인지 이태리 사람 같았다.




- 여유로움


프랑스에는 왜 오게 되었는지 서로 이야기하다가 "나중에 뭐 하고 싶어?"라는 질문을 했다. 곧바로 그는 "내가 어떻게 그걸 알겠어. 난 아직 23살인 걸."이라고 대답했고 동갑인 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원래 나이대로 친다면 한국에서 대학 졸업반이어야 했지만 '조금 늦어지는 걸 감안하고' 프랑스로 왔기에.

다른 사람이 보면 "졸업할 생각이 없구나."이고 나 역시 "프랑스로 가서 새로 1학년부터 시작할 거야"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한국 사회가 정해놓은 길 말고 옆에 나만의 길을 파자'고 줄곧 생각했던 사람이었데도 그런 '이탈리아 친구의 생각'은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태생적 여유로움.

문화에서 나오는 힘이 느껴졌다.


프랑스어 수업은 월, 화, 목, 금 9시에 시작했는데 역시 이탈리아 친구는 40분-1시간씩 늦기 일쑤였다. 잠을 좋아하는 나도 종종 그와 비슷한 시간에 교실에 들어갔다. 하루는 "써니, 어디야? 같이 교실 들어가자."라고 문자가 왔었는데  쉬는 시간까지 10분이 남아서 둘은 학교 카페테리아(식당)에서 크루아상과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 best croissant !  어떤 빵집보다도 학교 식당에서 갓 구워 나온 0.50 euros의 크루아상이 '몽펠리에'서 제일 맛나다.


- 커밍아웃

학교 식당 앞에서 광고하던 '코스튬 파티'에 나딜, 나 그리고 우크라이나 친구(발레히)가 가게 되었다. 우리는 바에 가기 전에 발레히 집에 다 모였다. 나와 발레히는 초록색 옷을 입고 초록색 화장을 했다. 나딜은 할리퀸 분장. 바에 가기 전, 서로 화장해 주는 이 시간이 얼마나 설레고 재밌었는지. 나딜은 발레히의 손길이 닿은 화장을 한참 확인하고 수정 요청까지 한 이후에야 흡족한 표정을 하고서 다 같이 파티를 진행하는 바로 출발했다. 10분 정도 걷자, 코스튬을 입은 사람들이 있는 바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적었고, 다들 친구 그룹끼리 놀고 있었다. 키 크고 잘생긴 두 명의 남자가 검은색 핏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둘은 사랑하는 사이였다. 아쉽게도.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분위기에 약간 실망한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발레히는 직접 말은 담배를 태웠고, 나딜에게도 권유했다. 담배를 끊었다고 했지만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띠며 그는 담배를 들었다. 그리고 사실 자신이 게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발레히는 자신은 그런 줄 알았다고 답했다. 이탈리아도 프랑스보다는 보수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가 잊지 못하는 전 애인이 고향에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허그와 붉어진 눈시울

뒤에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웃고 계신다. 그땐 몰랐던 것들이 지금은 보인다.





나딜만이 할 수 있는 허그가 있다. 나딜과 포옹을 할 때면 '따뜻하고 깔끔한'느낌이 든다.

글로는 설명을 못하는 그 느낌이 있다.








구름처럼 가벼우면서도 적절한 묵직함이 느껴지는 기분 좋은 그런 포옹. 몽펠리에를 떠날  때 나딜에게 줬던 편지에도 '너는 가장 따뜻한 포옹을 가졌어.'라는 말이 포함될 정도로.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그의 포옹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따뜻하고 기분 좋은 포옹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몽펠리에를 떠나기 직전 "아예 돌아가는 거야? 파리로 이사 간다며!"라고 말하는 나딜에게 "계획이 바뀌어서 한국으로 가게 되었어."라고 답했다. 작은 가게들이 모여있는 돔 형태의 시장에서 우리는 마지막 만찬으로 오징어 튀김과 맛조개를 먹었다. 나쁘지 않은 맛이었는데 한번 더 찾지 않을 것은 확실했다. 30유로를 썼는데도 우리는 배가 안 찼고 나는 친구들에게 주려고 산 봉투 속 라면들을 휘적거렸다. 나딜에게도 2개의 라면을 전달했다. "이제 라면 끓여 먹으면 딱인데..."라고 말하자 "라면 먹으러 가자!"라고 답했다. 그렇게 알게 된 지 7개월 만에 처음으로 나딜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김치 신라면 두 개에 숙주를 넣어 끓였다. 매운 음식을 잘 안 먹는 이탈리아인은 끓일 때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매운 수증기에 기침을 해댔으나 "와 이거 정말 맛있다."라며 한동안 먹기 위해서만 입이 움직였다. 배를 채우고 나딜은 타로점을 봐주겠다고 했다.






"하고 싶은 것도 잘하고, 원하는 것도 하게 되고, 다 좋게 나오네. 다만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하지 말고 한 가지에 집중해." 이것저것 찔러보기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는 타로점이었다.






배부른 우리는 산책하러 밖을 나갔고 그 사이 해가 저물어 어둑해졌다. 식당 테라스에 앉아있는 사람이 모두 남자여서 신기해하던 참. 나딜은 '보물찾기 게임'을 하고 싶었는데 지금 하면 안 되겠냐고 사슴 같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제일 가까웠던 상점 앞에 선 우리는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의자에도 올라갔지만 나온 건 없었다. "여기 한 곳만 더 가자" 우리는 페이루 공원을 지나 왼쪽 길가에 늘어진 펍을 지나 주택가 앞에 섰다. 힌트는 '마그네틱'. 아무리 찾아도 마그네틱 같은 건 보이지 않았는데 얼른 끝내고 펍에서 맥주나 한 잔 하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던 난 열심히 찾는 척을 해보며 "여기도 없는 거 같은데?"라고 말했다. 그렇게 같은 곳에서 15분 정도 탐색을 했는데 나딜이 "찾았다!"라고 소리치며 기뻐했다. 철로 된 기둥 뒤에 붙어있던 그 보물은 20센티 정도 건물 안으로 손을 넣어야 발견할 수 있던 것이었다. 보물 상자를 여니 돌돌 말린 종이가 있었고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우리도 오늘을 기억할 날짜와 두 명의 이름을 적었다. 아이처럼 들뜬 나딜! 기대하지 않았지만 찾게 돼서 기쁜 나! 우리는 펍으로 달려가 맥주 한 잔씩 주문했다. 그가 장난스럽게, 요란하게, 순수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 맞춰 나도 웃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처럼. 이상하게도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왜 웃어?"라고 말하면서 요란하게 웃던 우리 둘이었다. 어제 오랜만에 영상 통화를 하며 그 웃음을 다시 들었다.

"아직 뭘 할지 모르겠어. 몽펠리에에 머물지도 모르겠고. 일을 구하고는 싶어."


몽펠리에를 떠나기 하루 전날 밤

친했던 친구들이 고맙게도 모여줬고, 나딜과 언젠가 또 있을 포옹을 나눴다.

눈시울이 붉어진 나딜을 보며 오징어를 씹을 때 서로에게 했던 말을 상기했다.




우리가 연락을 계속하게 되든 안 하게 되든
나중에 꼭 서로의 나라에 갈 때면 연락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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