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후 느낀 부족함을 메우기 위하여
석사과정은 정말 짧았다.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고 그것으로 학회논문까지 써낸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석사기간 동안 무엇을 연구할지 정해져 있고, 기본적인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별다른 아웃풋 없이 시간이 흘러가는 것 같다. 내가 딱 그랬다.
처음엔 석사졸업을 할 때쯤 논문도 한 편 쓰고, 멋있는 연구원이 되어서 원하는 회사 문을 부수고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노력도 나름 많이 한 것 같다. 저녁과 주말 가릴 것 없이, 웬만하면 공부하는데 모든 시간을 할애했던 것 같다. 당연히 힘들었지만, 그만큼 바라던 것이 있었기에 참을만했다.
하지만, 졸업할 때가 되어서 아직 1 저자 논문도 없었고, 코딩이든 AI나 통계학이든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당연히 취업은 힘들었다. 졸업 후 회사에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 같았고 스스로 느껴지는 부족함이 너무 커서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뭔가 배움에 대한 부족함과 갈증이 많이 남아있었었다.
자연스럽게 박사과정에 진학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이제 확실하게 수학보다는 좀 더 practical 한 AI를 공부하고 연구하고 싶었다. 물론 공부한 수학 내용(e.g., measure theory에 기반한 확률론)들이 더 이상 쓰이지 않는 것은 아쉽지만, 어차피 그걸 이용해서 실제로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하기에는 내 능력의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고, 또 공부한 내용이 언젠가는 다시 쓸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위안 삼았던 것 같다.
그래서 지도교수님은 그대로 유지하되 과만 AI전공으로 바꾸었다. 덕분에 나는 코스웍 선택에 있어 큰 자유를 얻었고, 듣고 싶은 AI 과목들을 다양하게 들을 수 있었다.
박사과정 진학이라 그런지 입시 난이도는 높지 않았다. 지도교수만 정해져 있으면 웬만하면 합격시키는 분위기였다. 석사때와는 다르게 테크니컬한 질문이 하나도 없었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와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며 편하게 면접이 끝났었다.
박사가 시작되고 나서부터는 위기의식을 강하게 느끼고, 석사 때처럼 나이브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좀 더 처절하게 노력했던 것 같다. 특히 아직 1 저자 논문이 없다는 사실이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려 나를 힘들게 했다. (타전공과 다르게 AI분야는 학위과정 동안 1 저자 논문을 여러 편 써야 인정받는 어찌 보면 이상한 관례가 있다)
어떻게 해서든 1 저자 논문을 쓰겠다고 다짐했고, 여차여차 박사 1학기차에 ICML이라는 AI/ML분야 탑컨퍼런스에 1 저자로 논문을 운 좋게 게재할 수 있었다. 솔직히 아쉬운 점이 많은 논문이었지만, 드디어 나도 1 저자 논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자존감이 많이 올라갔다. 이때 교수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서 정말 감사했다!
이제 탑컨퍼 1 저자 논문도 가지고 있으니,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위안을 얻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린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내가 졸업할 무렵에는 AI 박사들이 대거 배출되면서, 과거보다 논문 실적이 훨씬 뛰어난 인재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논문의 개수보다 어떤 임팩트를 낸 논문인지, 그리고 어떤 연구를 했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AI를 연구하는 박사와 포닥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연구 분야의 빠른 변화를 겪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사회적 입지도 빠르게 변해가고 있음을 체감해 왔다. 나 역시 그 변화를 직접 경험했으며, 언젠가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글을 써보고 싶다.
아무튼. 박사과정은 이제 시작이었고 무수히 많은 challenge들이 남아있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