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베짱이
귓속이 늘 가려운 거인이 있었다. 견디지 못할 만큼은 아닌데,
무시하기엔 좀 가려운 그런 정도의
가려움.
그러던 어느 날 꿈이 원대한 고양이가 찾아왔다.
“저를 당신의 어깨 위에 올려줄 수 있나요?”
고양이가 부탁했다.
“내가 왜?”
거인이 물었다.
“저는 당신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더 멀리 그리고 더 빠르고 안전하게 돌아다니고 싶어요.”
“그렇군. 그러면 넌 나를 위해 뭘 해줄 수 있지?”
“당신이 나를 당신의 어깨 위에만 올려준다면, 나는 당신의 가려운 귓속을 매일매일 청소해 드릴게요.”
그렇게, 거인과 고양이는 거래가 이루어졌다.
그 후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건 고양이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거인의 평생 호구 혹은 아이작 뉴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라"라는 명언은 과학자 아이작 뉴턴이 한 말로 유명하다.
이 문구는 원래 라틴어로 "Nanos gigantum humeris insidentes"라고 표현되었으며,
이는 "거인의 어깨 위에 앉은 난쟁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뉴턴은 이 문구를 통해 이전 세대의 과학자들이 쌓은 지식과 발견이 세대를 거쳐 축적되었고, 그것을 토대로 현재 자신의 과학적 성취가 만들어졌다면서, 자신의 업적을 겸손하게 언급했다고 한다.
그런데 웃기게도 나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라”라는 문구를 내 방식대로 해석했다.
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면 거인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더 멀리 더 넓게 볼 수 있을 거라고.
거인의 발걸음에 얻어 타서
내 걸음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빠르기로
세상을 달릴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나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었다.
현실 속 거인은 이유 없이 나를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주지는 않았다.
물론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쓴 "행복한 왕자"라는 동화 속 주인공처럼 이유 없이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도와주는 사람들도 많지만, 현실에서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는 인연은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섰고, 이전에 내가 볼 수 없었던 세상을 보았고, 빠르고 안전하게 세상을 돌아다닐 수도 있었지만,
자칫 거인의 귓속을 긁어주며 살아야 하는 평생 호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시점이 왔다.
왜냐면 그것은 내 힘으로 직접 이룬 성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거인의 어깨 위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신에 내가 거인의 어깨 위에서 보았던
광대한 세상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내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나의 목표를 위해 걸어가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객관적 성취가 미미하다 할지라도 괜찮다.
적어도 나는 거인의 호구가 아닌,
아직은 미미하지만,
나만의 ‘아이작 뉴턴’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