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베짱이
나는 아들이 대학 입학을 했을 때, 아기 때부터 받아서 저금한 명절 용돈 500만 원을 모두 아들에게 주었다.
“이건 네 돈이니까, 어떻게 사용하든 알아서 하라”라고 했다. 대신 이제부터 등록금 이외에는 용돈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아들은 입을 벙긋 벌리고 넙죽 받아서, 500만 원을 1년 만에 모조리 술과 유흥으로 다 털어먹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남편은 출장을 가고, 오롯이 나만의 시간, 간식거리를 입에 문 채 10시 드라마를 즐기고 있는 그 순간,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들이 유치원생일 때까지 난 워킹맘이었다. 그러나 하나뿐인 아들을 내 손으로 키워보고 싶어서,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직장을 그만두고 아들을 위한 매니저 및 운전사를 자청해 왔다. 무슨 일만 생기면 데리러 가고, 데리고 오고를 반복했다.
그 일에 후회는 없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았던 건 아니다.
그래서 아들의 대학 입학과 동시에 나는 아들 매니저 일을 그만두었다. 그런 내게 아들의 요청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아들에게 대답했다.
아들은 하는 수 없이 혼자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집 앞 몇 정거장 앞에서 내렸다.
“엄마,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요. 차비도 없어요. 저 좀 데리러 와 주세요.”
술에 취한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분노의 욕을 삼키면서 아들을 데리러 나갔다.
그런데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운전을 20년 넘게 해 왔지만, 여전히 어제 면허증 딴 사람처럼 운전이 어눌하다. 특히 밤에는 완전 꽝이다. 그런 운전실력으로 아들이 내렸을 법한 버스 정류장 근처를 몇 바퀴를 돌았지만,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술 먹고 뻗어 있는 아들의 다리를 밟고 지나가는 자동차.
술 취해 의식 잃은 아들의 텅 빈 지갑을 뒤지다가 가난한 아들의 뒤통수를 치고 달아나는 나쁜 놈들이 마구마구 떠올랐다.
끔찍한 상상에 떨면서 아들과 통화를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통화도 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일단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자기 방 침대 위에서 뻗어 자는 아들이 보였다.
그때 나는 내 마음속에서 선명하게 솟구치는 한 문장을 보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술에서 깬 아들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학교 근처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정도의 원룸을 구해서 나가거라. 보증금은 장기 할부로 빌려주고 첫 달 월세는 엄마가 지급해 줄게.”
아들은 내 말을 뒤통수에 꽂고 대답도 없이 현관문을 나섰다. 하지만 아들은 알고 있었다.
가출해야만 한다는 것을.
그날 아들은 기숙사비를 유흥비로 털어먹은 자신과 비슷한 과 친구 병만이 그리고 과 일등 승승이랑 소주잔을 기울이며 자신들의 힘든 사정을 토로했다. 그때 친구들의 자취방을 며칠 전전하던 그래서 더는 잘 곳이 없는 병만이가 제안했다.
“친구야, 학교 내 **국제회관에서 숙식 제공하는 뷔페 알바 자리가 있어서, 나는 면접 보고 왔어. 너도 지원해 볼래?”
아들은 그 소식을 듣고 눈이 번쩍 뜨였다고 했다. 일단 친구랑 같이하니까 든든하고 재밌을 것 같았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하지만 첫 월급을 받기 전까지 둘의 생활은 참혹했다.
“병만아, 너 돈 좀 있어?”
아들의 질문에.
“3,000원 있어.”
“잘됐다. 그러면 내 돈과 네 돈을 합쳐서 휴지 좀 사자.”
그렇게 둘은 6,000원을 들고 편의점에 갔으나, 엄마가 맨날 끙끙대며 사 왔던 휴지는 감히 엄두도 못 낼 가격이라는 걸 알았다.
결국 키친타월 한 묶음을 사서 각자 나눠 가졌다. 그리고 첫 월급이 나오는 그날까지 버티다가, 도저히 알 될 때는 인근 상업용 건물로 뛰어갔다.
"엄마, 휴지는 휴지의 용도가 따로 있다는 걸 알았어요."라고 외치면서.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지금까지. 쭉~
나는 여전히 아들을 사랑하지만, 헤어져서 가끔 보는 아들이 참으로 좋다.
가끔 봐서, 애잔하고
가끔 봐서, 잔소리하지 않아도 되어서 행복하다.
아들은 일하면서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 깨달았다고 했다.
그리고 세상이 그리 공정하지도 공평하지도 않다는 것을 노동으로 알아차렸다고 전했다.
그래서일까 예전보다 훨씬 철든 모습으로 자기 길을 걸어가고 있는 듯 보였다.
누군가 내게 아들과 남편 중 누구를 더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들이다.
아들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들은 남이다. 나와는 다른 인격과 가치관을 가진 완전한 남이다.
그래서 우리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필요한 것 같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아들과 나를
서로를 더 많이 그리고 더 오래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사랑한다!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