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베짱이
https://youtu.be/x00PA3pM4Vs?si=deUCE97_GYmWMsom
[가위바위보] 작곡 류지원, 작사 김현정
지금은 어른이 된 아들이 하나 있다.
아들을 키울 때 나는 그의 성장을 위해서는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엄마처럼.
그래서 나만의 교육관이 필요했다.
미성년 자식을 유리잔에 비유하고,
자식에게 투하하는 금전적 자원 혹은 감정적 에너지를 물로 정의했다.
그리고 나의 교육관 대로 실행에 옮겼다.
먼저, 유리잔 크기를 객관적으로 가늠하고,
그 잔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에너지의 70%만 채웠다.
나머지 30%는 아들 본인이 채우라고 가르쳤다.
사실, 늘 고민했었다. 그냥 다 채워줄까?라고.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우주의 모든 긍정적 에너지를 다 모아서 유리잔에 부어주고 싶어도,
일단 유리잔이 가득 채워지면 나머지 에너지들은 모두 흘러넘친다.
그러면
흘러넘치는 에너지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방식은
에너지 낭비이고, 부모와 자식 모두에게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동생과 ‘자식을 어떻게 키울까?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다른 교육관을 듣게 되었다.
동생의 설명은
‘설사 내가 부어준 에너지가 유리잔에서 흘러넘쳐 버려진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그 유리잔은 자신의 최대용량을 다 채울 수 있다.’였다.
그리고 자신의 최대용량으로 인생에 도전장을 내밀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부모가 다 채워줄 수 있는데, 본인이 채우라고 남겨둔 30%의 용량을 자식이 안 채우면, 어떡할 거냐는 거였다.
결국 자식은 70%의 용량으로 세상에 도전장을 내밀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었다.
그의 설명을 들어 보니, 그 말도 맞는구나 싶었다.
‘역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유리잔의 용량과 크기도 변할 수 있는 건데,
그것을 내가 너무 쉽게 판단한 것은 아닐까?’ 하는 후회가 뒤섞인 걱정이 밀려왔었다.
하지만 또,
자식으로 비유한 유리잔이 부모의 에너지 자원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자신이 채우고 싶지 않은 에너지가 들어와서 싫어하면 어떡하지?
흘러넘치는 에너지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당시는 우리는, 각자의 생각만을 나누고 이야기를 끝냈다.
자녀 양육의 교육관은 하나로 설명되거나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난 내 방식대로, 동생은 동생방식대로 자식을 키웠다.
자식을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참으로 어렵다.
식당에서 자녀와 함께 도란도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가족을 보면, 너무나 고맙고 대견해 보인다.
마음 같아선 옆에 가서 ‘파이팅’이라고 외쳐주고 싶지만, 그러면 어디 잡혀갈 것 같아, 그냥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보고 웃기만 한다.
그냥, 이렇게, 브런치 글로써,
자식을 키우는 모든 젊은 부부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힘내세요 그리고 그 순간들을 즐기세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