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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이니율 Jun 27. 2024

애호박 비상!

엄마의 애호박나물 해치우기

엄마가 애호박나물을 만들어주셨다. 애호박이 많이 나온다고 나물로 만들어주신다는 말에 냉큼 좋다고 했는데 이렇게 큰 숙제로 돌아올 줄 몰랐다. 둥근 호박으로 만들셨는데 다 사용하니 큰 반찬통 한 통이 나왔다. 맛있어 보이긴 하는데 이걸 언제 다 먹지 싶어 살짝 걱정이 되었다.




우려는 며칠 안가 현실로 왔다. 엄마가 거의 그대로인 애호박 반찬통을 보신 것이다. 나름대로 먹었다고 말해보았지만 엄마는 자꾸 섭섭해하셨다. 좋아한다고 많이 만들었더니 먹지도 않는다고 말이다. 그동안 그냥 반찬으로도 집어먹고 비빔밥도 몇 번 해서 챙겨 먹었다. 하지만 양이 많아서 생각보다 줄어들지 않은 것인데 그 사이에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진 것이다.


억울하긴 하지만 나 먹으라고 고생해서 만드신 건데 더 빨리 먹어야겠다 싶었다. 만든 지도 꽤 지나서 조금 더 두면 쉴 것 같았다. 상해서 버리면 엄마는 정말 화를 내실지도 모른다. 비상이다! 우선 남은 양을 보고 계산에 들어갔다. 조금 더 먹고 1/3 정도 남았는데 두어번 더 먹으면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먹기는 물리고 비빔밥은 지겨워서 다른 방법이 없나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때 김밥이 떠올랐다. 어떤 재료든 밥이랑 말기만 하면 만들어지는 김밥! 나물 김밥도 있는데 애호박나물을 못 넣을 이유는 없었다.


김밥을 하도 좋아해서 김밥김은 상시 준비가 되어 있다. 바로 밥부터 떠서 식초, 참기름, 소금에 양념을 했다. 애호박만 들어가면 밋밋할 것 같아서 계란을 꺼내 지단을 부쳤다. 그리고 김을 놓고 밥을 얇게 편 다음 지단을 깔고 애호박 물기를 꽉 짜서 길게 이어서 올렸다. 돌돌 말아서 자르려니 김밥이 자꾸 흐물거렸다. 힘 있는 재료가 들어가지 않아서인지 찌그러져 모양이 제멋대로였다. 그래도 맛은 담백하니 좋았다. 여기에 간장을 올려먹으면 딱 좋겠다 싶어 전에 만들어둔 양념장을 꺼내 찍어 먹었다. 꿀맛이었다.



그렇게 한 차례 애호박나물 숙제가 끝났다. 애호박나물은 비빔밥이 아니면 처치곤란인 줄 알았는데 이리저리 조리해 보니 쓰임새가 많았다. 다음에는 전이나 국수도 해 먹어 봐야겠다. 


애호박나물을 두고 안 먹은 게 아니라 많이 만든 엄마 잘못이라고 싫은 소리를 했는데 후회가 된다. 냉장고에 새 애호박이 있던데 말씀드려 봐야겠다. 애호박나물 너무 맛있던데 또 만들어주실 수 있냐고. 이번 나물을 싹싹 긁어먹었으니 엄마는 기쁘게 다시 만들어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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