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로 라페 만들기
한 이웃님이 당근라페를 만들면 설렌다고 했다. 당근라페는 하루정도 절여야 맛이 고르게 베이면서 맛있어진다. 미리 만들어야 다음날 맛있는 라페를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잘 절여진 라페는 샐러드에 곁들이거나 빵에 올려 먹으면 그야말로 꿀맛이 된다.
이 기분은 나도 공감한다. 당근라페를 좋아하는데 당근을 채 썰 때부터 슬슬 기분이 좋아진다. 라페는 생으로 만들기 때문에 맛이 잘 베이게 하려면 얇게 썰어야 한다. 얇게 썰려면 그냥 썰때 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가만히 당근만 썰고 있으면 수행하는 느낌이 드는데 잠시나마 마음이 비워지는 듯해서 좋다. 새콤한 맛, 달콤한 맛, 시큼한 맛을 위해 이것저것 양념들이 들어가는데 대단한 재료도 아닌데 고급스러운 맛이 나서 매번 깜짝 놀란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하던가. 맛을 보지 않아도 얼마나 맛있는지 알기 때문에 빨리 먹고 싶어서 내일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이렇게 라페를 만들면 즐겁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애타기도 한다. 좋아하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다.
라페 만들기는 간단하다. 불에 조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조리시간도 길지 않다. 라페는 당근, 양배추로 보통 만드는데 이번에는 색다르게 오이로 만들어보았다. 라페 만들기의 첫 번째는 소금에 절이는 것이다. 채소에 남아있는 물기를 제거해서 아삭한 식감을 만드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오이를 얇게 썰어서 소금에 절여지는 동안 소스를 만든다. 소스는 올리브오일, 식초, 레몬즙, 꿀, 홀그레인머스터드, 소금을 약간 넣어주면 된다. 페퍼론치노나 크러쉬드레드페퍼를 넣어주면 매콤한 맛이 더해져서 풍미가 좋아진다. 빨갛게 깨처럼 뿌려진 것이 보기도 좋다. 고급 음식 느낌이 난다. 완성된 오이라페는 크림치즈나 마요네즈와 잘 어울리는데 식빵에 발라 같이 먹으면 좋다. 간단하게 계란이나 고구마와 함께 먹어도 잘 어울린다.
완성된 오이라페는 예쁜 유리병에 담는 걸 권한다. 오이는 특히 청량한 색이 예쁜데 속이 잘 보이는 유리병은 그 느낌을 극대화시켜준다. 남은 양까지 손쉽게 체크할 수 있어 좋다. 라페를 위해서라도 마음에 드는 유리병 하나쯤은 사두는 걸 추천한다.
라페를 보고 있으니 근래에 이렇게 설렌 적이 있었는가 싶다. 감정이 무뎌지는 건지 억지로 좋은 일을 만들어야 그나마 기분이 좋아진다. 무얼 하지 않아도 그냥 설레었던 일은 까마득하다. (아, 조카를 보러 가는 전날이면 설레긴 한다.) 내일이 기다려지는 설렘을 느끼고 싶다면 라페 만들기를 추천한다. 라페 덕분에 행복하게 잠들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나는 라페만 봐도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