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말이밥 만들기
'말다'는 부정적인 말이다. 하던 일을 중단하거나 그만두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요리에서 마는 것은 즐거운 마무리 단계 중 하나다. 다양한 재료를 한번에 먹기 위해 모으는 일이다. 말면 보기도 좋고 신기하게 맛도 더 좋아진다. 김밥도 말고, 라이스페이퍼로 월남쌈도 말아먹는다. '말다'라는 단어가 주방에서는 좋은 의미다.
올해도 며칠이 남지 않았다. 새해가 되면 이번에는 꼭 잘해보자고 다짐하는데 연말이 오면 부끄러워질 때가 많다. 계획한 것은 반의 반도 못 이루고 또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후회를 덜 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 이전에 했던 것은 하지 말고, 나아져야 한다.
냉장고를 열었다. 사둔 재료가 없어서 할만한 요리가 없었다. 그럴 땐 만만한 계란이 최고다. 오랜만에 계란말이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계란은 좋아하지만 계란말이는 잘 만들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귀찮아서다. 각종 채소를 색에 맞춰 잘게 썰어야 하는데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오늘은 먹고 싶기도 하고 다른 반찬이 없으니 손이 가더라도 도전해 보기로 했다.
계란을 2개를 깨서 볼에 담고 양파, 당근, 파를 잘게 다져 넣었다. 소금 간만 간단히 하고 찬밥을 넣었다. 계란말이는 부추, 애호박, 파프리카, 버섯, 두부 등 다양한 재료를 넣어봤는데 찬밥을 넣는 건 처음이다. 계란볶음밥도 있고 계란김밥도 있으니 계란말이밥도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그래도 걱정돼서 양은 조금만 했다. 팬에 불을 올리고 예열해서 계란물을 부었다. 자글자글 익는 소리에 기분이 좋아졌다. 반쯤 익었을 때쯤 끝에서부터 말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양이 흐트러지고 찢어져서 이게 될까 싶지만 조금씩 말다 보면 계란이 점점 커지면서 모양도 예쁘게 다듬어진다. 내가 전문 요리사가 된냥 뿌듯해지는 순간이다.
밥을 넣어서 뚱뚱한 계란말이가 되나 했는데 역시 양이 부족했는지 납작한 모양이 나왔다. 조금이나마 크게 보이려고 어슷하게 썰었다. 예전에는 속이 뜨거나 둥글지도 각진 것도 아닌 이상한 형태가 나오곤 했는데 몇 번 말다 보니 요령이 생겨서 꽤나 만족스러운 모양이 나온다. 김밥도 계란도 말다 보니 재미가 쌓여간다.
촘촘하게 말아진 계란말이를 보니 이제라도 내 일상의 안 좋은 습관들, 행동들도 그만하고 이제부터라도 잘 살아내보고 싶어졌다. 잘 말아진 계란말이처럼 단단하고 밝은 일상을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