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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이니율 Dec 01. 2024

조카의 "안아"라는 말

힘들다고 하는 말

요즘 조카가 부쩍 말이 늘었다. 옹알이라고 할 수 있는 정체불명의 말이지만 가끔 정확하게 말을 하기도 한다. 그중에서 유독 똑바로 발음하는 말이 있다. 바로 "안아"다. 어딘가 불편하거나 잠이 오면 '안아'라고 말하면서 손을 뻗는다.




어디서 배운 건지 작은 아기가 안아달라고 말하니 신기하기만 했다. 안아달라는 의사표현만큼은 정확히 하니 엄마, 아빠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바로 알아듣고 원하는 대로 안아준다. 한 번도 실패 없이, 조카는 바라는 대로 안긴다. 그렇게 안긴 조카는 손만 뻗어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도 하고, 더 품을 파고들어 더 포근하게 안기기도 한다. 오늘도 조카는 '안아'라는 말을 여러 번 외쳤다. 안겨서 윗벽에 있는 사진을 보고 놀았다. 그리고 선반에 있는 강아지 인형을 직접 꺼내고 싶다고 했다. 나중에는 잠이 와서 안기고 싶어 했다.


조카는 원하는 것이 있거나 힘이 들면 망설이지 않고 안아달라고 한다. 나도 어렸을 때는 안아달라고 여러 번 엄마, 아빠를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 조카처럼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아달라는 말은 고사하고 힘들다는 말도 잘하지 못한다. 나는 원래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데 힘들다는 말은 더 하기 어렵다. 그래서 매번 속으로 혼자 삭이고 만다. 그런데 조카를 보면서 힘들다는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는 행동, 포옹은 실제로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엔도르핀이 분비돼 안정감이 느껴지고 아플 때 회복하는 속도도 빨라진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사랑의 힘 때문이지 싶다. 하루를 지내다 보면 늘 좋은 일만 있지 않다. 어떤 날은 모진 말에 상처받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일에 마음앓이하는 날도 있다. 그러다 면역력이 떨어져서 며칠 아프기도 한다. 그럴 때 포옹 한 번이면 나아질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포옹도 좋지만 팔로 포옹하는 자세를 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며칠 전에 한 드라마 다시 보기를 하다가 인상 깊은 장면을 보게 되었다. 세명의 여자친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드라인데 세명 중 한 명인 '은정'은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힘들어했다. 날이 지나면서 나아지는 듯했지만 사실은 환영을 볼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고 자신이 힘들다는 걸 깨달은 은정은 나머지 두 친구에게 힘들다고, 안아달라고 말한다. "나 힘들어, 안아줘."라고 말한다. 두 친구는 눈물을 흘리며 힘들다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안아주었다. 실제 드라마 감독도 이 장면을 최애 장면으로 꼽는다고 할 정도로 드라마에서 중요한 장면이다.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정도가 힘든 건가 의심이 들기도 하고, 나만 힘든 건 아닐 텐데라는 묘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남들 눈치 보면서 비교하지 말자. 내가 힘들면 힘든 것이다. 이리저리 따지지 말고 나를 안아달라고 하자. 물론 용기가 필요하다. 드라마 속 은정이도 정말 힘들게 말을 꺼냈다. 주위를 살펴보자. 그리고 힘들어하는 친구를, 가족을 그리고 나를 안아주자. 안아주는 그들도 드라마 속 친구들처럼 오히려 위로를 받고 고맙다고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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