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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원 Aug 08. 2023

비로소 30분을 걸을 수 있게 됐다.

작은 것에서 느끼는 희열감

2022년 3월의 마지막 날 디스크 수술을 했다.


그 후 1년 4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여전히 마비된 다리의 근력감소와 힘 빠짐은 현재진행형이다.



딸 방학을 맞이해 여름휴가를 보내고 감기를 앓았다.


덕분에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걷고, 스트레칭을 한동안 할 수 없었다.


역시나 걷지 않으니 다리의 감각이 돌아오는 속도가 더디게 느껴졌다.


밤에 잠을 푹 잔다는 건 나한테 좋은 신호는 아니다.


신경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신호가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발바닥에 쥐가 나는 듯 따가운 느낌이 없었다.



러닝머신을 걸은지 2주가 지났고 딸은 어제 등원을 시작했다.


오늘은 좀 걸어봐야지라는 생각에 분리수거 더미를 잔뜩 들고나갔다. (헬스장 옆에 분리수거장이 있어서 헬스장에 갈 때면 분리수거할 쓰레기를 잔뜩 챙겨나간다.)


따가운 햇볕을 가로질러 발걸음을 다급하게 옮기며 후다닥 분리수거를 마쳤다.


헬스장에 들어가면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들 몇 명과 노인분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나는 신발을 갈아 신고 늘 항상 걷는 러닝머신으로 향한다.


처음 3분은 3.5k/m속도로 걷고 그 후 17분은 5k/m 속도로 걷는다.


정확히 20분을 채우고 cool down 버튼을 눌러 속도를 점진적으로 감속시킨다.


그러면 다급했던 심작박동수가 천천히 가라앉고 안정적인 호흡으로 돌아온다.



오늘은 오랜만에 걷는 러닝머신에 욕심이 나서 내 원래 루틴보다 10분을 추가해 걸었다.


하지만 고비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온다....


러닝머신을 멈추고 싶은 순간이 언제인지 들으면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5분이다.


이쯤 되면 심장박동수가 130을 훌쩍 넘긴다.


그럼 급히 올라간 심장박동수와 함께 땀이 송골송골 올라오는 느낌이 난다.


급격하게 열은 오르고 호흡이 흐트러지며 stop버튼을 쳐다볼 때가 바로 마의 5분이다.


거기서 2분 정도 꾹 참고 입을 벌리지 않고 코로 호흡하면 심장박동수는 서서히 낮아진다.


여전히 열은 오르지만 불쾌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5k/m 속도로 25분을 걸었다.


늘 그렇듯 복근에 힘을 주고 뒤꿈치를 눌러 힘을 실어 걷는다.


오랜만에 걸어서 어지러움을 느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지만 무사히 마의 5분 구간을 통과했다.


25분 동안 두 번의 고비가 찾아왔지만 견디고 30분에 다다르는 순간 cool down버튼을 힘차게 눌렀다.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분명 나는 처음 러닝머신을 걸을 때 20분도 버거워 15분을 4km 속도로 걸었다.


멈춤과 동시에 어지러움과 이명현상을 느꼈다.


그게 바로 불과 두 달 전이다.


그런데 지금은 뭐랄까 다리도 더 가벼워진 것 같고 체력도 강해진 기분이다.


고작 두 달이다. 꾸준함이 주는 희열은 바로 이런 곳에서 온다.


힘들다고 느꼈던 것이 덜 힘들다고 느껴지는 이런 순간말이다.




열심히 걷지 않았다.


아프다는 핑계로 2주를 헬스장에 오지 못했고 보란 듯이 다리의 감각은 더디게 돌아왔다.


그런데 나에게 괜찮다는 듯이 30분이나 걸을 수 있는 힘을 주었고 난 오늘 희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운동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내 글을 보며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디스크 수술을 하고 감각마비가 있으셨던 분들이 내 글을 본다면 아마 다른 감정을 느낄지도?




힘든 구간은 사람마다 다를 거다.


러닝머신을 걷든, 일을 하던지, 육아를 하던지 말이다.


그 여정에서 내가 넘기기 힘든 '마의 5분' 구간은 어디인가?


그 구간을 잘 넘기고 쉼표를 찍고 마침표를 찍을 때 기분은 어떨까?


이렇게 힘을 얻는다.


하루하루 변화가 보이지 않고 측정할 수 없지만 이렇게 선물처럼 다가오는 희열의 순간에서 말이다.




오늘 밤은 나에게 어쩌면 숙면이 어려울 수도 있다.


열심히 걸었으니 그에 대한 보상으로 새벽에 쥐 난 듯한 고통을 살포시 안겨주겠지만 수용할 수 있다.


진통제가 있으니 30분 안에 다시 잠들 수 있고, 아침이면 부쩍 나아진 감각으로 날 맞이할 테니 말이다.


오늘은 좀 더 기분 좋게 잠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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