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딸과 함께 배우는 인생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해외에서 큰딸이 중학생이 되면서 사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사춘기를 맞이했다면 지금과는 조금 달랐을까??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하루종일 방안에 들어가서 좀처럼 얼굴을 볼 수 없는 큰아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 이것저것 물어보면 대답도 잘 안 해 주는 큰딸.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며 사춘기의 특징이겠지 하면서도 불쑥불쑥 화가 치밀어 오른다. 어디까지 이해해줘야 하는 걸까 잠깐 대화하려고 딸아이의 방에 들어가려 해도 나가라고 성화를 부리는 바람에 쫓기듯이 방을 나오게 되는데 마음이 참 씁쓸해진다. 불행인지 행운인지 아이와 일본어를 같은 선생님에게 배우고 있기에 아이의 소식을 선생님께 듣게 된다. 처음엔 어찌나 부끄럽던지.. 나도 모르는 일을 선생님이 부모인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나의 눈엔 아직도 도와줘야 할 것이 많은 어린아이 같기만 한 아이가 혼자만의 시간이 더 소중한 나이가 되었다니. 이젠 독립된 한 인격체로 나의 품에서 놓아줘야 할 때라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마음이 자꾸 머리를 따라가지 못해 여러 가지 형용할 수 없는 짜증과 서운함들이 밀려온다.
사실 내 딸이지만 미울 때도 많다. 함께 시간 보내고픈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고 자꾸 밀어내기만 하는 아이가 야속해진다.
이제는 적응이 좀 될 때도 되었건만 매번 거절당할 때마다 화가 나고 속상한 건 어쩔 수 없다. 엄마도 사람이기에.... 아이는 커가면서 점점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고 확연히 아이와 나는 다르다는 것을 요즘 부쩍 많이 느낀다. 그런데 그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않고 틀렸다고 지적하며 자꾸 나의 틀에 맞추려 하다 보니 부딪치고 결국 아이에게 모진 말들을 퍼붓게 된다. 기다려주자 기다려주자 마음속으로 대뇌이지만 어느새 인내심이 바닥나 또 아이와 한바탕 하고 나서 후회한다.
이제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면 어떨까. 작은아이보다 큰아이한테는 유독 엄격해지는 나를 보며 미안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사춘기는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통과의례임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쉽지 않다.
언젠가 친정집에서 비둘기가 베란다에 알을 낳았는데 눈만 굴리며 어미는 어떠한 미동도 하지 않고 알들을 꼭 품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가족은 그런 것이 아닐까 아무리 힘들어도 누구 하나 잘났거나 못났어도 서로 으스대지도 탓하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버티는 날들이 더 많은 것, 딸아이도 지금 사춘기라는 이 터널을 다 지날 때 즈음 알 수 있지 않을까 엄마가 아빠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
오늘 아침에도 슬며시 딸아이의 방문을 열고 아무 말 없이 머리를 가지런히 빗겨주며 좋아하는 토스트를 책상에 쓱 올려놓고 나왔다. 뒷모습에도 느낄 수 있다. 슬며시 미소 짓는 아이의 마음을.. 사실 쉽지는 않지만 아이의 좋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면 언젠가 아이 안에 긍정의 싹이 자라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것이라 믿는다.
요즘 시대가 참 좋아졌다. 구글포토에서 추억의 사진들을 자동으로 보여주며 추억을 회상하게 해 주는데 2년 전, 3년 전, 5년 전 어렸던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그때의 추억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해맑고 사랑스러웠던 큰아이 예린이. 이제는 사춘기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에게 무한 긍정으로 품어주던 그때의 나의 마음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