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 년 전 라식을 받으러 안과에 갔을 때의 일이다. 수술 전 이런저런 검사를 마치고 의사에게 검사 결과를 듣게 되었다. 의사는 다행히도 충분히 수술이 가능한 눈이라고 했다. 다만...
"동공이 참 크신 편이네요. 이 정도면 대한민국 상위 5퍼센트에 들겠어요."
눈 크기는 하위 5퍼센트일 것 같은데, 동공 크기는 상위 5퍼센트라니 이게 무슨 비효율인지. 의사는 동공이 큰 탓에 빛 번짐이 심했을 거라며 빛 번짐이 없는 경우와 있는 경우의 예시 사진을 보여줬다.
그 사진을 본 나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빛 번짐이 있는 세상에서 살았기 때문에 응당 원래 세상이 그런 줄 알았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거니 했다. 그런데 사진 속 빛 번짐이 없는 세상은 내가 살아온 상과 딴판으로 놀랍도록 선명했다. 나는 여태껏 다른 사람들이 보는 세상과 다른 세상을 보고 있었는데 전혀 모른 채 살아왔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는 남이 되어 본 적이 없고 남도 내가 되어 본 적이 없으니 서로의 경험을 교차검증 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내가 보는 녹색과 남들이 보는 녹색은 다를 것이다. 다들 그 색을 녹색이라고 부르기에 나도 녹색이라고 부를 뿐, 실제로는 보라색으로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각기 다른 민감도와 숫자의 시각세포가 있고 각기 다른 방식과 강도로 뇌에 전달할 것이다. 다만 색맹인 사람들이 테스트를 해 보기 전에는 본인이 색맹인 것을 모르듯, 우리도 다른 경험을 같은 경험인 것으로 착각하고 사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우주가 있다. 비유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보는 것, 들리는 것, 느끼는 것 모두가 제각기 다른, 각자의 우주를 살고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우주를 살고 있으니 취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며 삶의 방식이 다른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세상에는 본인의 취향과 생각만이 옳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집불통 독불장군 같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안과 검사를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조금이나마 타인을 더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지 않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