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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할인간 Jun 01. 2024

나에 대한 고찰

31.  아이들과 함께하는 주말

 주말은 나에게 또 다른 평일과 같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아서 세끼를 챙겨야 하고 일도 해야 한다.

그래서 농장과 주거 공간이 매우 가깝다.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에..

토요일 하루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 주기 위해서 빼두는 편이다.

큰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별 일이 없으면 체험이나 여행에 대부분 참여한다.

오랜 시간을 함께 다니다 보니 빠진다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고 즐겁다고 말해 주었다. 집에서 친구들과 게임하고 디스코드로 대화하거나 책 읽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곳을 가거나 체험을 하면서 즐기는 것에  많이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나는 다르면에서 보면 독특한 엄마 혹은 별난 엄마 일지도 모르겠다.

공부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뭐든 처음은 서투르기 때문에 배워나가면서

익히고 자기에게 필요하다면 더 열심히 배우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말을 잘하지 않는다. 수업시간에 열심히 들으라고 몇 번 말한 적이 있지만 그게 전부다. 나도 학창 시절에 공부가 좋았던 사람은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것에는 열심히 했고 즐거웠으니까.


큰 아이는 한글 배우기가 참 많이 힘들었다. 자연 어린이 집을 다녔는데 그림 그리기, 자연물로 미술활동, 악기, 놀이활동을 하다 보니 한글을 배우는 수업은 없었다.

엄마들이 초등학교를 가야 하니 숙제라도 내주라며 이야기하는 통에 칸 공책에 적어준 글자를 써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하지만 아이는 너무 싫어했다.

같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싫으면 하지 말라고 했다.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을 때도 그렇게 전달했다.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같이 책을 읽고 하다 보면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었다.

글자에 호기심을 가졌을 때 학습지를 알아봤다. 일주일에 선생님이 한 번 오시니까 나머지는 나의 몫이 되지만 그래도 기회다. 선생님은 좋은 분이셨고 아이도 즐겁게 수업을 했다.


그러다 작은 형님이 온다는 말도 없이 집에 와서 아이가 수업하는 것을 밖에서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고모가 학습지를 하는데 다른 곳에 아이를 맡겼다고 화를 냈다.

초등학생부터 하는 학습지를 하면서 실적 욕심이 났나 보다. 책을 구입하면 같이 읽고 수업을 하겠다며

억지를 부리는 바람에 수업을 끊어야 했다. 80만 원을 드려 전집을 샀다.

수업은 자기가 편한 시간으로 정해졌다. 아이는 고모와 하는 수업을 싫어했다.

낯설고 친해지려는 노력도 없이 수업을 진행했다. 초등학생 수업을 하듯이. 아이는 울고 형님은  그냥 수업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3번을 했을 때 나는 인내심이 바닥났다.

"형님 오지 마세요." 딱 한마디만 했다.


초등학교 입학 할 때까지 다른 학습지는 하지 못 했다. 책을 읽으면서 반복되는 단어와 간단한 단어들만 겨우 알아서 갔다. 이름표가 있어도 이름을 읽을 줄 모르니 답답했을 것이다.

담임 선생님께 상황 설명을 드리고 반아이들 이름을 다 받아서 그걸로 한글 배우기를 시작했다.

다시 시작된 두 시누들의 실적 희생양이 되어야 했다.

태블릿으로 강의를 들으며 매일매일 해야 하는 학습지를 하라고 강요를 했고 아이에게 회유를 했다.


아이와 보내는 하루는 지옥 같았다. 수업하는 내내 옆에 앉아 있어줘야 했고 모르는 것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초등1학년이 하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다. 하루라도 빼먹으면 전화가 온다.

일이 있어 미루어지면 주말 동안 해야 했다.

실적이 없으면 책을 사라고 전화가 온다. 매달 말일이 되면 전화가 올까 봐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

남편과 다툴 일이 늘어났다.

2남 2녀 중 남편은 막내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누나들이기도 하고 형제지간에 싸울까 봐 말도 못 하고 미칠 지경이었다.

더는 참기가 싫어져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걸었다.

 "형님 더 이상 힘들어서 못 하겠습니다. 이제 그만할 거예요"

만나서 아이를 설득해 보겠다는 말에 나는 이성을 잃어버렸다. 그리고는

"더 이상 집에 오지 마세요. 책은 필요할 때 전화 할 테니까 전화도 하지 마시고요. 자꾸 이러시면 남편과 이혼할 겁니다. 사유는 형님이 될 거예요. 어머니께도 말씀드릴 테니 알고 계세요."라고 말했다.

더 이상 목소리가 듣고 싶지않아 전화를 끊어 렸다.

큰 형님, 작은 형님이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고 남편에게 넘겨 버렸다.


그때부터 아이는 중2 때까지 검도 학원 하나만 보냈다. 주말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산이나 수목원을 갔고 체험하는 곳이나 하고 싶을 것을 해왔다.


원데이 클래스를 검색해서 다양한 체험들을 많이 했다. 검도를 오랫동안 했기에 다른 운동도 해보라며 클라이밍도 배웠다. 교육청 지원 승마수업도 선정되어 10회를 수강했고 포니 3등급 자격증도 땄다.

두 아이가 같이 선정되어서 정말 기뻤다.


승마 수업에 앞서 예비 소집에서 작은 아이가 장애인이라서 자신이 없다는 선생님 말씀 그리고 여기는 힐링 승마를 하는 곳이 아니라 실전 말을 타는 곳이라고 거듭 강조하셔서 수업에서 쫓겨날 뻔했었다.

나는 내 아이를 잘 안다 여태 내가 해왔던 모든 것을 걸고 무사히 수업을 끝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차근차근 설명을 드리고 첫 수업 이후 힘들다고 생각하시면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다.


우리는 남들보다 일찍 도착해서 장비를 모두 갖추고 출석 체크를 했다.  먼저 하고 있는 수업을 눈에 익히기

위해서 열심히 보며 설명을 했다.

"말은 큰 소리를 내면 놀라 조용히 해야 한다"라는 말을 무한 반복했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라고 계속 숙지를 시켰다. 큰 아이와 같은 수업에 넣어서 익숙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큰 아이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엄마가 책임질 테니 너는 신경 쓰지 말고 수업에 집중하라는 말도 했다. 10회 수업이  끝났을 나는 눈물이 났었다. 선생님들께서도 고생했다면 친창해 주셨다.


큰 아이 중학교 2학년 때 방가 후 수업이라고 해서 한 시간을 더 하고 하교하는 것이 있었는데 하지 않겠다고 해서 알겠다며 사인을 해서 안내장을 보냈다.

일을 하는 도중에 전화가 왔다. 정말 허락하신 것이 맞냐는 확인 전화였다.

"네. 제가 허락했습니다."

"네? 조금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데 학교에서 공부를 더 하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이가 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 굳이 학교에서 길게 시간을 보낸다고 귀에 들어올까요?"

"아니.. 그래도 어머니."

"선생님. 저는 아이의 행복을 원합니다. 아이가 학교를 다니면서 행복하면 좋겠고 가고 싶은 학교였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알겠다는 말과 함께 통하는 끝이 났다.


우리는 주말에 무엇을 할지 고민한다. 매번 색다른 것을 할 수는 없지만 같은 걸 할지라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오늘은 독립서점인 보틀북스에서 어린이 책방지기 추천 픽 책과 빙수 만들기, 책갈피 만들기, 나만의 볼펜 만들기 등을 체험했다.

큰 아이에게 책방지기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흔쾌히 해보겠다고 했다.


아이들과 다 향한 경험을 하고 배워가는 과정은 나를 성장하게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과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났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내가 바라는 건 아이들의 건강과 행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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