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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의투영 Sep 13. 2024

나의 삶의 조각들

48.  남편이라고 쓰고 웬수라 읽는다.

 날씨의 변덕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아무것도 하기 싫게 했다가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이틀 동안 비가 온다고 해서 급한 일 아니면 책도 읽고 조용히 사색도 하고 싶었다.

하루 동안만 비가 오락가락 하더니 오늘은 구름만 살짝 끼고 여름의 티를 벗지 못한 무더위로 사람의 진을 뺀다. 비와 함께 무더위도 한 풀 꺾기 기를 바랐다. 가을이 왔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여름 속에 살고 있다.

비가 오지 않아서 자꾸 불러 대는 남편 때문에 계획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시댁에 혼자 가도 되면서 이 운전을 하라고 부른다.

"마누라 하고 드라이브도 하고 좋잖아"

"혼자 좋은 거 아니고 같이 좋은 거 맞아?"

"그럼 다 니 생각해서 그런 거지."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어머니 말씀으로는 여태 살면서 이런 더위는 처음 본다고 하셨다. 배추 모종을 사다가 세 번이나 옮겨 심으셨단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나야 맛있는 김장용 배추가 될 텐데 열기로 인해 모종이 자꾸 말라죽는다고 하셨다. 물 주는 시설도 설치해 둔 상태지만 올해 배추 농사가 잘 안 될 것 같은 불 길한 조짐이 든다.

올해 배추 값이 폭등해서 금치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오전 10시를 넘어서면 아직도 안전 안내 문자가 온다. 폭염 주의보 발효 중  그늘, 휴식, 수분섭취, 필수, 야외, 논, 밭등 작업 및 활동자제에 관한.

어렸을 때는 추석이 되면 날씨가 쌀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긴 팔을 입고 찍은 사진도 있다.

뉴스에서 34도를 넘어서는 무더위가 시작된다며 걱정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한 여름의 온도는 40도를 웃도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구 온난화가 몸으로 느껴지는 기분마저 든다.


어머니 댁에 유리창이 깨져 유리를 갈아 와 창틀에 끼워 드리고 점심을 함께 먹으로 나갔다.

남편과 어머니, 아버님 뭐 먹을까 옥신각신 하시길래

"운전대 잡은 제 맘대로 가겠습니다" 하고 복국을 먹으러 갔다.

차 타고 20분 정도 걸렸는데 아버님은 그냥 집에 있는 밥이나 먹지 멀리까지 나온다며 말씀하셨지만

어머니와 나는 날씨도 더운데 주방에 들어가서 불 앞에 서고 싶지 않았다.


자식들이 오지 않으면 반찬이 줄지 않는다며 하기도 싫고 입맛도 없다는 어머니.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맨날 하는 밥에 반찬 뭘 해 먹어야 하나 고민이 많다.

"남편 뭐 먹고 싶어?" 물어보면

"니 하고 싶은 거 해라." 하거나 "니 잘하는 거 암거나 해라."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면 파업하고 싶다. 요즘 큰 아이의 먹는 양이 아빠 못지않다. 한참 성장기라서

불고기를 한 냄비 한다고 했는데 한 끼로 끝나 버린다. 나물도 찌게도.  냉장고는 채운다고 채웠는데 늘 비어 있는 것 같다. 잘 먹어서 좋긴 하지만  오늘의 메뉴 그것이 매일매일 내어 주는 숙제 같다.


아무거나 해줘도 잘 먹지만 늘 똑같은 걸 해줄 수는 없으니 돌려 막기도 힘들다.

이것저것 추가도 해보고 색다른 음식도 만들어 본다. 시켜 먹고 싶지만 이 동네는 7시가 넘어가면 가게들이 문을  닫아 버린다. 배달도 안 한다. 물론 윗동네에 배달을 시키면 된다 배달비 따블로 주면 오기는 오니까.

엄마나 동생,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봐도 다들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또 끼니때가 지나간다. 아버님 찬스로 점심을 복국으로 해결했다.

어머니의 옆구리 찌르기 공격으로 아버님께서 카드를 주시며 결제하라고 하셨다.

남편은 친한 친구 2명과 저녁에 고기를 먹으러 간다고 했다. 비선실세 회담이라나 뭐라나.

명절이 다가오면 꼭 만나는 친구다. 한 명은 농사를 시작하면서 매일 보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 하우스 바로 건너편에 하우스가 있다.


사촌 오빠도 근처에 있어서 셋이 모였다 하면 수다 삼매경이다. 와야 할 시간에 안 와서 전화를 하거나

찾으러 가야 했다. 나의 샤우팅이 한 바탕 지나가야 모두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런 걸보고 경상도에서 '노가리 깐다고 궁디가 찔기다' 라고 한다.

우스개 소리로 노가리는 다 나? 까서 우쨌노?라며 남편에게 잔소리를 시전 한다.


차를 새로 가져온 날부터 에어컨이 별로 시원하지 않아서

"가스 없는 거 아니야?"

"이 차는 좀 달리면 시원해진다."

그래서 믿었다. 차에 대해서 많이 알고 달그락 소리라도 나면 어디 배어링이 나갔는지도 맞추는 사람이라서

말이다. 정비소에서 정비 기사님이랑 이야기도 잘 통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게 맞는지 확인도 했었으니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안 시원하다고 하기엔 선풍기로 치면 미풍정도는 되었으니까. 시부모님을 태우고 식당에 가는데 아버님께서 너무 덥다면 에어컨 켠 거 맞냐고 하셨다.

남편을 먼저 하우스에 내려 주고 시부모님을 모셔다 드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화를 냈다.

"내가 가스 없는 것 같다고 했지? "

"와? 따신 바람 나오더나?"

이 양반아 지금 웃을 때냐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를 악물고

"자주 가는 정비소에 전화해 바라 지금 가도 되는지."


내 말이 맞았다. 가스가 거의 바닥이 나서 없다고 했다. 가스충전하는데 5만 5천 원 들었다.

가스충전하고 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 놈의 남편 들어오기만 해 봐라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도 비선 실세 회담 중인지 집에 안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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