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변덕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아무것도 하기 싫게 했다가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이틀 동안 비가 온다고 해서 급한 일 아니면 책도 읽고 조용히 사색도 하고 싶었다.
하루 동안만 비가 오락가락 하더니 오늘은 구름만 살짝 끼고 여름의 티를 벗지 못한 무더위로 사람의 진을 뺀다. 비와 함께 무더위도 한 풀 꺾기 기를 바랐다. 가을이 왔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여름 속에 살고 있다.
비가 오지 않아서 자꾸 불러 대는 남편 때문에 계획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시댁에 혼자 가도 되면서 굳이 운전을 하라고 부른다.
"마누라 하고 드라이브도 하고 좋잖아"
"혼자 좋은 거 아니고 같이 좋은 거 맞아?"
"그럼 다 니 생각해서 그런 거지."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어머니 말씀으로는 여태 살면서 이런 더위는 처음 본다고 하셨다. 배추 모종을 사다가 세 번이나 옮겨 심으셨단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나야 맛있는 김장용 배추가 될 텐데 열기로 인해 모종이 자꾸 말라죽는다고 하셨다. 물 주는 시설도 설치해 둔 상태지만 올해 배추 농사가 잘 안 될 것 같은 불 길한 조짐이 든다.
올해 배추 값이 폭등해서 금치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오전 10시를 넘어서면 아직도 안전 안내 문자가 온다. 폭염 주의보 발효 중 그늘, 휴식, 수분섭취, 필수, 야외, 논, 밭등 작업 및 활동자제에 관한.
어렸을 때는 추석이 되면 날씨가 쌀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긴 팔을 입고 찍은 사진도 있다.
뉴스에서 34도를 넘어서는 무더위가 시작된다며 걱정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한 여름의 온도는 40도를 웃도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구 온난화가 몸으로 느껴지는 기분마저 든다.
어머니 댁에 유리창이 깨져 유리를 갈아 와 창틀에 끼워 드리고 점심을 함께 먹으로 나갔다.
남편과 어머니, 아버님 뭐 먹을까 옥신각신 하시길래
"운전대 잡은 제 맘대로 가겠습니다" 하고 복국을 먹으러 갔다.
차 타고 20분 정도 걸렸는데 아버님은 그냥 집에 있는 밥이나 먹지 멀리까지 나온다며 말씀하셨지만
어머니와 나는 날씨도 더운데 주방에 들어가서 불 앞에 서고 싶지 않았다.
자식들이 오지 않으면 반찬이 줄지 않는다며 하기도 싫고 입맛도 없다는 어머니.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맨날 하는 밥에 반찬 뭘 해 먹어야 하나 고민이 많다.
"남편 뭐 먹고 싶어?" 물어보면
"니 하고 싶은 거 해라." 하거나 "니 잘하는 거 암거나 해라."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면 파업하고 싶다. 요즘 큰 아이의 먹는 양이 아빠 못지않다. 한참 성장기라서
불고기를 한 냄비 한다고 했는데 한 끼로 끝나 버린다. 나물도 찌게도. 냉장고는 채운다고 채웠는데 늘 비어 있는 것 같다. 잘 먹어서 좋긴 하지만 오늘의 메뉴 그것이 매일매일 내어 주는 숙제 같다.
아무거나 해줘도 잘 먹지만 늘 똑같은 걸 해줄 수는 없으니 돌려 막기도 힘들다.
이것저것 추가도 해보고 색다른 음식도 만들어 본다. 시켜 먹고 싶지만 이 동네는 7시가 넘어가면 가게들이 문을 닫아 버린다. 배달도 안 한다. 물론 윗동네에 배달을 시키면 된다 배달비 따블로 주면 오기는 오니까.
엄마나 동생,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봐도 다들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또 끼니때가 지나간다. 아버님 찬스로 점심을 복국으로 해결했다.
어머니의 옆구리 찌르기 공격으로 아버님께서 카드를 주시며 결제하라고 하셨다.
남편은 친한 친구 2명과 저녁에 고기를 먹으러 간다고 했다. 비선실세 회담이라나 뭐라나.
명절이 다가오면 꼭 만나는 친구다. 한 명은 농사를 시작하면서 매일 보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 하우스 바로 건너편에 하우스가 있다.
사촌 오빠도 근처에 있어서 셋이 모였다 하면 수다 삼매경이다. 와야 할 시간에 안 와서 전화를 하거나
찾으러 가야 했다. 나의 샤우팅이 한 바탕 지나가야 모두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런 걸보고 경상도에서 '노가리 깐다고 궁디가 찔기다' 라고 한다.
우스개 소리로 노가리는 다 깠나? 까서 우쨌노?라며 남편에게 잔소리를 시전 한다.
차를 새로 가져온 날부터 에어컨이 별로 시원하지 않아서
"가스 없는 거 아니야?"
"이 차는 좀 달리면 시원해진다."
그래서 믿었다. 차에 대해서 많이 알고 달그락 소리라도 나면 어디 배어링이 나갔는지도 맞추는 사람이라서
말이다. 정비소에서 정비 기사님이랑 이야기도 잘 통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게 맞는지 확인도 했었으니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안 시원하다고 하기엔 선풍기로 치면 미풍정도는 되었으니까. 시부모님을 태우고 식당에 가는데 아버님께서 너무 덥다면 에어컨 켠 거 맞냐고 하셨다.
남편을 먼저 하우스에 내려 주고 시부모님을 모셔다 드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화를 냈다.
"내가 가스 없는 것 같다고 했지? "
"와? 따신 바람 나오더나?"
이 양반아 지금 웃을 때냐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를 악물고
"자주 가는 정비소에 전화해 바라 지금 가도 되는지."
내 말이 맞았다. 가스가 거의 바닥이 나서 없다고 했다. 가스충전하는데 5만 5천 원 들었다.
가스충전하고 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 놈의 남편 들어오기만 해 봐라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