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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의투영 Sep 19. 2024

나에 삶의 조각들

49. 추석은 지나갔다.

 여름 그림자의 여운이 너무 길다. 가을이 왔다고 온통 가을 옷, 가을에 읽으면 좋은 책, 가을 여행하기 좋은 곳 등을 소개하는 매체물들이 올라오지만 아직은 덥다.

9시를 기점으로 온도가 점점 올라간다. 10시에 어김없이 도착하는 안전 안내 문자 '폭염 경보 발효 중 또는 폭염 특보 발효 중.' 여름의 기세는 뜨겁다. 꺾일 줄 모르는 고집불통처럼.

길가에 은행나무는 열매를 가득 달고 있어 가지가 축 늘어져 있다. 제법 떨어져 자동차 바퀴에 뭉개져 있기도 하고 달리는 차위로 통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곧 이 거리는 노란색으로 물들어서 사람들의 사진 명소가  될 것이다.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결정하는 순간부터 명절 분위기가 많이 한산해졌다. 그렇다고 일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같이 음식을 만들던 형님과 동서가 오지 않아서 어머니와 내가 다 해야 하니까.

음식 가짓수는 줄기는 했지만 양은 그대로다. 큰 집이라서 대용량의 음식을 해오신 어머니.

시작은 늘 "먹을 만큼만 좀 적게 하자." 하셔 놓고는 해 오신 습관대로 손이 알아서 움직이셨다.

"작게 하려고 했는데 양 조절이 안 됐네." 하신다.

예상했던 결과다. 나물도 김치 냉장고에 들어가는 김치통으로 2통 정도 하셨으니. 말해 뭐 하겠는가?

"많으면 나눠 먹고 좋지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수육과 먹을 새 김치도 담가 놓으셨고 식혜도 만들어 두셨다.

어머니 댁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사는 나의 직통 형님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혼하고 몇십 년 만에 남편을 데리고 시댁에 왔다. 입으로만 음식 하는 게 꼴 보기 싫어서 이기도 하고 "내가 가서 부칠까? 내가 얇삭하니 바삭하게 잘한다 아이가."

저 말을 기다렸다. "그래 실력 발휘 좀 해봐라." 덥석 물어서 코를 꾀었다.

어머니께서 아들을 데리고 와서 약간은 놀란 눈치 셨지만 금방 태연해지셨다. 한 손이라도 더 있으면 좋은 게 아니겠어~. 손자와 손녀도 데리고 왔으니 좋으셨으리라 생각한다.

날씨가 더워서 음식이 빨리 상할 수 있으니 오후에 하자고 하셔서 가능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더워지기 전에 일찍 음식을 했기 때문에 좋은 기회였다.

말처럼 음식이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몸소 느껴 보라고.


시댁에서 내가 젤 날씬하다. 그러다 보니 불 앞에서 튀김을 하는 건 온전히 내 차지다.

10년을 넘게 해왔으니 튀김의 달인까지는 아니어도 중수는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하는 치자물을 넣은 반죽을 입혀 노란색이 예쁜 바삭한 튀김. 2시간을 서서 튀겨 내야 한다. 온도 조절도 잘해야 되고 속도 잘 익혀야 한다.  오며 가면 갓한 튀김을 집어 먹는 아이들.

너무 맛있단다. 하우스 일을 하다 보니 땀구멍이 잘 열리는 건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온몸에서 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남편은 전 반죽양을 보고 꽤나 놀란 것 같다. 그 정도면 많이 줄인 건데..

대형 전기 프라이팬을 두 개나 펼쳐 놓고 어머니와 둘이서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집에서 아주 가끔 반죽을 해주면 부쳐 주기도 했다. 꼭꼭 눌러 펴서 얇고 바삭하게 하려다가 어머니께 혼이 났다.

갓 먹을 때는 괜찮지만 어느 정도의 두께와 둥근 모양으로 예쁘게 만들어야 한다. 대형 전기 프라이팬에 6개의 전 모양으로 자국이 나있다. 그대로 하면 되는데 고집이 발동한다. 얇고 바삭해야 맛있다면서.

나중에 데워 먹으려면 너무 얇게 부치면 안 된다. 어머니의 잔소리와 "시키는 대로 해야지. 뭔 말이 그리 많데?"나의 잔소리가 콜라보를 한다. 입이 삐죽 튀어나온 남편이지만 금방 개선이 되었다.

"이제 잘하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갓튀김도 입에 하나 물려주었다.

튀김, 고추 해물 부추전, 산적, 깻잎 고기 전, 계란물 입힌 서대 구이, 육전 등등 모든 음식이 끝이 났다.

내일 아침에 오겠다면 일어났다. 나물과 만든 음식들을 싸주셔서 가지고 집으로 향했다.

어린 고추나무들이 아직은 햇볕에 버티지를 못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왔기 때문에 온도가 내려가는 4시쯤 다시 열어 준다. 하우스로 가는 동안 전 부친다고 앉아 있었더니 허리가 아프다며 말하는 남편을 보면

"겨우 그것 가지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다가 "힘들었지? 고생했어."로 변경했다.

도와준다고 나름 애를 썼는데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추석 당일 아침도 여유로웠다. 매번 시댁에서 자고 5시 반에 일어나 세수한 후 화장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나는 탕국을 끓이고 어머니는 수육을 삶으셨다. 차례 준비를 위한 과일을 씻어 닦고 제기에 하나씩 옮겨 담아 차례상을 차렸었다. 그 절차가 없어지고 나니 7시쯤 집에서 시댁으로 왔다.

아침밥을 먹고 바로 성묘를 가면 된다. 언제 모일까를 의논하는데 10시에 모이자는 말이 나왔다.

시원할 때 일찍 다녀와서 쉬는 게 좋을 텐데.. 보기엔 낮은 산 일지 몰라도 과수원길을 구비 구비 돌아 올라가다 보면 온통 땀범벅이 될 텐데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뜨거워지기 전에 하우스 가서 고추나무도 덮어 주어야 한다. 휴일이라서 일찍 일어나기 싫은 건 알지만 더운 건 더 싫을 것이다.

겨우 8시 반에 만나기로 했단다. 막내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명절 차례를 없애자고 했다.

큰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나면 작은 집에서 해야 하니 그게 귀찮았던 모양이다. 산소에서 간단하게 차려 절 만하자고 이야기가 나와서 시작되었다. 말은 안 해도 되니 편할 것 같아 보인다.

그렇게 하기로 했으면 성묘 후 각자 집으로 가야지 왜 큰 집에 밥을 먹으러 오는 건지 모르겠다.

"휴일이라서 오늘 아침밥 안 주는 날이네."라는 말이 들렸다. 빈 속으로 성묘를 하고 왔다고 배가 고프단다.

아.. 여기가 식당이냐고 묻고 싶다. 습관 대로 큰집에 올 거면 차례를 지내던가..

직속 형님은 음식하러 안 온 게 좀 찔리기는 했는지 자기 몸이 안 아픈 데가 없다면 핑계를 댔다.

어머니는 귀가 찬 듯 표정에 드러나지만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다.

맛이 있니 없니 해가면서 먹는데 밥그릇을 뺏고 싶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기 남편 험담은 덤이다. 자기가 얼마나 불쌍한지 말하기 대회가 있다면 1등 했을 것 같다.

불편한 사람 중의 한 명이다. 제사 지내기 싫다고 교회 다니겠다는 사람이다.


성묘를 다녀온 사람들이 하나두씩 모여들면서 집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하필 오늘 컨디션이 별로다.

배도 아프고 형님과 5분 이상 말하면 두통이 온다.

남편이 하우스 덮으러 가자고 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빨리 돌아왔다.

예전에는 남편만 하우스에 다녀오고 차례상 정리하고 설거지하고 밥 차리고 또 설거지하고 온종일 부엌에 있어야 했다. 집에 돌아와서 잠만 잤다.

예전에는 입 다물고 아무 말 안 했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지. 아무 말 안 하니까 모르는 거겠지 싶어서 주저리주저리 남편한테 하소연하듯 말을 하게 되었다.

시댁에서는 막내지만 친정에서는 맏이인 나. 맡은 바 책임을 다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예전에 본 드라마 중 '며느라기'가 생각난다. 현실이 잘 반영되었다는 말과 요즘 세상에 누가 저러냐 허구다라는 말로 싸우는 댓글을 본 적이 있다. 그 집사정은 아무도 모르는 거라고 말해 주고 싶다.


주말에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하던데.. 제발 더위 좀 한풀 꺾어 가주면 좋겠다.

이제 9월도 얼마 안 남았다. 시간은 잘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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