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맞이하기가 왜 이다지도 어려운 건지. 뉴스에서는 늦장을 부리는 무더위 덕에 계절의 주기를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었다.
장마 같은 이 비가 반가우면서도 두렵다. 금요일에는 작은 아이의 소풍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는 이른 아침부터 내린 비로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예정된 장소에 가지는 못 했지만 학교 체육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단다.
비 오는 날은 운전하기가 싫지만 뜨거운 대지를 식혀줄 고마운 비다. 다른 날보다 조금 더 신경 써서 운전하기로 한다. 감미로운 음악을 더해주면 행복한 날 중 하루가 될 테니까..
외곽 도로는 산이 둘러싸고 있어서 신기한 관경들을 볼 수 있었다. 내리는 비가 열기를 진압하듯 산 여기저기에서 하얀 연기가 올라왔다. 낮게 깔린 구름 같기도 하고 이런 현상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검색을 해보니 온실 기체라고 했다. 보통 수증기라고 표현을 많이 한다고도 했다.
비가 내리니까 후덥지근해서 인지 게으름이 발동한 것인지 일이 하기 싫었다. 조금씩 조금씩 수확을 향해가는 여정을 진행 중이다. 아직 많이 바쁜 것은 아니니까 드라이브나 하자 말하던 남편이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난 듯 "당신 운전면허 갱신이나 하러 가자" 했다. 12월 31일까지 하면 되니까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앞으로 얼마나 바빠질지 예상할 수 없었다. 핑계 좋고 날씨가 도와준다.
일하려고 나온 터라 옷차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집으로 가서 외출 준비를 했다.
운전면허 시험장으로 가면 바로 찾아올 수 있다. 오랜만에 가는 면허시험장이라서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도착해 신체검사장에서 서류를 작성하고 즉석 증명사진도 찍었다. 사진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음에는 꼭 사진관에서 찍어 가야겠다. 이 번이 두 번째 면허 갱신이다.
1종 보통은 신체검사비가 6천 원이고 2종은 7천 원이다. 예전에는 검사를 할 때는 시력검사와 색맹 검사, 손가락 접었다 펴기, 앉았다 일어나기를 했었다. 지금은 시력검사가 전부다.
뭔가 훅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바빠 보이지도 않은데 많이 간소화가 되었다.
민원실로 가라고 했다. 시니어 도우미께서 번호표를 뽑아 주시며 친절히 안내해 주셨다. 178번 앞에는 9명이 대기 중. 번호가 화면에 보인다. 2번 창구 발급처에 서류와 헌 면허증, 사진 1장과 1만 6천 원을 결재했다.
"이름이 화면에 뜨면 찾아가세요."라는 말에 대기석에서 사람들도 관찰하고 화면을 보기도 했다.
5분도 안 걸린 것 같은데 내 이름이 보였다. 처음 면허 땄을 때 기분이 새록새록 떠 올랐다.
새거라 반짝반짝 빛이 난다. 디자인도 좀 바뀌었다. 20분 만에 미션을 클리어 한 기분이 든다.
남편은 면허 시험 치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대기를 하는 사람들의 틈에 끼어 웃음끼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초조한 사람들 가운데 행복해 보이는 딱 한 사람 같았다.
대형면허도 있는 남편은 "저게 저렇게 어려울 일이야."라고 했다.
"가진 자의 여유야?"라고 물었더니 웃는다. 대형 면허를 딸 때 큰 버스 안에 혼자 타니까 대게 이상했단다.
1종이든 2종이든 대형이든 코스는 같으니까 해볼 만하단다. 학원을 다닌 게 아니라서 나는 참 어려웠다.
4번 만에 장내 기능에 붙었는데 경찰 아저씨가 이제 고만 보자고 말하며 화단에 있는 나무는 장식이 아니라고 말을 해주었다. T자 코스가 꽤나 어려웠다. 화단에 올라타기까지 했으니까.
평행 주차는 진입만 하고 나왔었다. 지금은 평행 주차를 젤 많이 쓴다.
1종보통을 치는 사람들은 "불합격하셨습니다."라는 말이 많이 들렸다.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 2종은 "합격하셨습니다."라는 말이 많이 들렸다. 2종의 합격률이 높았다.
희비가 교차하는 이곳. 하늘도 같이 운다. 속으로 '힘내세요'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넉넉하게 싼 김밥과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보통 아이들이 소풍을 가면 김밥 10줄을 싼다.
밤에는 많은 양의 비가 쉴 새 없이 내렸다. 주말 내내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서 아무 계획도 잡지 않았다.
어린 고추나무들을 두고 하우스를 비운다는 것은 이번 농사를 포기하겠다는 말과 같다.
남편은 밤새 뒤척이다가 이른 새벽에 나갔다.
다행히 물이 많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하우스 천장의 물도랑이 물의 무게에 못 이겨 빠지는 바람에 손을 계속 봐야 했다. 실 시간으로 단톡 방으로 보내지는 소식들. 윗동네 도로가 침수되었단다.
산에서 무너져 내려온 흙이 물 빠지는 곳을 막아 버려 범람했다는 소식. 연이어 오는 안전 문자 홍수 주의보, 산사태 주의, 외출자제 등. 동생에게도 전화가 왔다.
하우스 물에 안 잠겼냐고. 잠시 외출하고 돌아왔는데 도로가 물에 잠겨 통행이 어려웠단다.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른 동네는 하우스가 물에 잠겼다는 소식이 들렸다. 몇 년에 한 번씩 작기를 시작하면 가을장마 같이 며칠 동안 비가 내리는 이런 경우는 종종 있어왔다. 더위가 이렇게 오래가는 건 처음이었다.
기후의 변화는 무섭다. 농사에 많은 영향을 끼치다 보니 대처를 한다고 해도 어려움이 많다.
겪어 보지 않은 일에 대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올해 날씨는 참 극단적이다. 푹푹 삶더니 이번에는 물에 퐁당 담근다. 뭐든 적당히가 좋은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