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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Sujin May 13. 2024

서아 #1 연필을 찬양하다

내가 연필을 좋아하는 이유는 평범하다. 만만해서.

처음부터 연필이 만만한 대상은 아니었다. 태어나 처음 내가 손에 쥔 도구는 아마 숟가락이었으리라. 이제 돌 지난 아이, 혹여 체할 세라 자분자분 무른 밥을 떠먹여 주시던 어머니의 숟가락질이 성에 차지 않았는지 엄마 손에서 숟가락을 훽 잡아채서 양껏 밥을 떠먹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내 나이 마흔을 훌쩍 넘긴 오늘까지도 명절날 우리 아버지 술자리 단골 이야기감이다. 그렇게 본능의 도구를 쥐던 손에 연필이 쥐어지던 순간은 어쩌면 내 생이 야만을 넘어 처음 문명의 몸짓을 시작하던 찰나가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연필을 쥐는 의식은 만만치가 않았다. 사용하는 손가락도 정해져 있고, 너무 헐겁게도 또는 너무 세게 쥐어서도 안되고, 너무 세워 잡아도 안되고, 뉘어 잡아도 안된다. 바.르.게 연필 잡기 훈련부터 고사리 손에겐 공부의 시작이었다.

국민학생 시절이었던 6년 내내, 받아쓰기 100점부터 중간고사, 기말고사 이런저런 시험들을 치를 때도, 우리 어머니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게 해 주었던 각종 경시 대회와 백일장 대회에 나갈 때도 늘 내 필통 속에서는 서너 자루 연필들이 함께였다. 중학생이 된 이후로는 또각또각 소리마저 세련된 샤프에 밀리고, 고등학생 시절엔 형형색색의 펜과 볼펜, 형광펜에 치이고, 직장에선 밥벌이용 빨간 볼펜에 자리를 내어 주던 연필을 근래에 다시 잡기 시작했다. 필사를 시작하면서 필기구를 무얼로 할지 고민하던 차에 만만한 연필을 선택한 것이다.

오랜만에 잡는 연필이지만 서걱서걱 거리는 소리는 여전히 정답다. 볼펜, 사인펜의 무미건조한 플라스틱 바디나 만년필의 금속 바디에 비해 연필은 나무로 된 바디도 위화감을 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고쳐 쓸 때 쓱쓱 지워낼 수 있어 좋다. 컴퓨터로 작업하면 수정은 더욱 용이하겠지만 지우개로 지웠다 다시 써내려 가는 맛도 꽤 운치 있다. 흔적이 남지 않게 빡빡 지워가다 보면 왠지 처음부터 더 고심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드르륵드르륵.. 연필이 가진 또 하나의 멋은 점점 줄어드는 키에 있다. 다른 필기구처럼 속내를 굳이 감추지 않고 샤퍼로 깎아나갈 때마다 본인의 남은 생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솔직함이 좋다. 연필 본인이 직접 글을 쓰는 것도 아니면서 두어 줄 쓰고 나면 이제 더는 쓰기 힘들다는 듯 뭉특해지는 연필심 하며, 글을 써내려 갈수록 마치 혼신을 다해 창작이라도 하는 양 점점 줄어드는 연필을 보면 때로 기가 찰 때도 있다. 그러나 연필은 연필 본연의 숙명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글감을 생각할 필요도, 생각에 꼭 맞는 표현을 찾아낼 필요도 없지만 본인에게 주어진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가히 프로메테우스를 닮았다. 오늘도 책상 위 연필꽂이 속 몽당연필들을 내다 버리지 못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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