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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투티 Oct 30. 2023

스물한 살, 프라하에서 반년 [2]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스물한 살, 프라하에서 반년 [1]




2020년 1월 30일 동아시아에 코로나가 먼저 퍼지고 유럽은 아직 퍼지지 않았을 때, 마스크와 비닐장갑을 끼고 공항으로 갔다. 비행기를 타고 체코 프라하 공항에 내렸을 때는 체코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마스크 규제 같은 게 없었을 때였다. 여기까지는 코로나가 퍼지지 않길, 바라면서 마스크 없는 자유를 누렸다. 잠깐의 달콤한 시간이었다. 한 달 후인 3월 초에 체코에 첫 환자가 생겼다.




그 때부터 체코에도 코로나가 급격하게 퍼지기 시작했고 정부 명령으로 모든 교육시설은 원격 수업으로 전환되었다. 내가 다니체코어학당도 예외는 아니었다. 체코에 왔는데 체코를 돌아다니지 못하는 건 정말 아쉬웠다. 원격수업은 마지막 수업인 6월까지 계속되었다. 중간에 환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 박물관, 미술관 등은 문을 닫았다. 웃긴 건 식당들도 일정 기간 강제 폐쇄 조치가 되어서 강제로 집에서 요리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와 버렸다. 배달이나 픽업은 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식당 폐쇄 조치가 내려졌을 때 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 있었다.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서 집 밖에도 잘 못 나가게 될 거라는 걸 예측하고 요리를 배운 게 아니지 않은가. 이때까지 요리 배운 것들을 써먹으라는 어떤 메시지로 느껴졌다. 원격수업이라서 통학하는 시간도 줄고, 코로나 때문에 어디 돌아다니기도 힘들어졌다. 마트만큼은 항상 열었기에, 나의 동선은 집-마트-집-마트가 되었다. 영양소를 고루  먹어서 면역력이라도 키우자고 생각했다.




먹고 싶은 것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상황이라 감사했다. 체코 마트에는 물론 김치를 팔지 않기에, 김치 등 한국 식품은 프라하에 있는 한인마트에서 사 먹었다. 그러나 한인 마트는 기숙사에서 거리가 꽤 있었기에 체코 마트에서 파는 서양식 식료품들을 주로 사서 먹었다. 각종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빵을 사서 샌드위치도 만들어 먹고, 고기도 가끔 구워 먹었다. 체코가 한국보다 고기가 매우 싸서, 고기 먹기가 좋았다. 체코 마트에서도 쌀은 팔아서 - 길다랗고 푸석한 베트남식 쌀이 제일 많은데, 헝가리식 찰기 있는 둥근 쌀도 판다 - 냄비밥을 곧잘 해 먹었다. 감자도 쪄서 치즈 얹어 먹고.



요리 말고도 다른 집안일들,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방 청소를 하고, 내가 먹은 것들을 다 설거지하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고, 하수구에 낀 머리카락을 버렸다. 밥 해먹고 집안일 하면 하루가 다 간다. 매일 먹을거리를 고민하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혼자 산다는 것은 아무도 옆에서 할 일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할 일을 원하는 때에 할 수 있다는 자유가 있지만 내가 스스로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책임도 함께 따라왔다. 혼자서도 나 자신을 건강하게 돌볼 수 있는 영역에 도달하고 싶었는데, 체코에서 생활하는 것은 그걸 시도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때까지의 삶은 입시를 향해 몰아치고 목적 없이 살던 것이었는데, 체코에 오고서 시간이 많아지고, 내 안을 고요히 들여다볼 수 있는 명상의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김치는 얼마나 오랫동안 안 먹을 수  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혼자 있어도 안 심심한지와 같은 것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타인의 욕망을 내 것으로 삼아 내 것으로 채워야 했던 빈 공간을 타인으로 꽉 채우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에 대해 안 사실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은 바로 내가 사람과 대화 없이 에너지를 충전할 시간이 꽤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동시에 여러 사람이나 여러 그룹에서 어울려 지내지 못하는 나를 깎아내리는 삶을 살고 있었다. 프라하에서 세계적인 격리의 시기를 겪으면서 나의 어찌 보면 강점에 대해 알게 되었다. 홀로 지내는 시간을 내가 즐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런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방법에 눈을 떴다.




혼자 집 안에서 할 일은 참 많다. 그 때 혼자 하던 것들을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책읽기, 그림 그리기, 실내 운동하기, 영화 보면서 혼맥하기, 영어 공부하기 등이 있었다. 그리고 글쓰기. 글쓰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결국 이것 때문에 브런치에 들어온 것이니, 그때 했던 글쓰기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부를 만 하다. 결국 프라하에서 6개월을 지내면서 이동제한 및 국경봉쇄 때문에 다른 유럽 국가는 커녕 체코의 다른 도시도 가 보지 못했지만, 내면의 변화를 가득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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