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어찌 되었건, 걱정이 많았던 나는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혼자서만 배부르고 등 따숩고 다른 사람들 다 무시하며 살겠다는 얘기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순간에 혼자가 되었을 때도 여럿이서 함께 살 때와 비슷한 수준의 행복감을 느끼고 싶었다. 그것에 더해 내가 쓴 글 <성인과 어른의 차이>에서 서술했던 대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계적으로 성인이 된 나 자신을 뭔가 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다.
대학교 2학년 때 지인에게 배운 간단한 운동을 바탕으로 내 몸은 내가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운동 다음은 요리였다. 그 때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라면 끓이기, 밥 짓기(요리의 영역인지도 의문), 엄마가 뭘 볶으라고 하면 볶으면서 불 앞을 지키고 있는 것 정도였다. 야채 씻는 법도 모르고 양파 써는 법도 모르고 마늘 손질하는 법도 몰랐다.
선배들은 보통 대학교 3학년이 되면 학교의 제도를 이용해서 체코에 한 학기정도 공부하러 나간다(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 내 전공은 체코어다 정확히는 체코슬로바키아어인데 이 긴 학과명은 내 손가락을 피곤하게 한다). 그렇게 나갈 걸 계획했던 2학년의 나는 혼자 살기 예행 연습을 하기로 한다. 체코에서 허구한 날 밥을 사 먹기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분명 요리를 해야 하는 순간이 올 텐데, 요리법을 몰라 건강하지 않은 것으로 때우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몸이 비실비실하기 때문에 먹는 거라도 건강히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학 전까지 엄마한테 이것저것 요리하는 법을 배웠다. 양파 써는 법, 마늘 손질하는 법을 배우고, 가지볶음, 된장국, 불고기, 애호박전, 카레 같은 요리를 배웠다. 과일 깎는 법을 배웠다. 자유를 원했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원할 때 먹고 싶었다. 누군가가 해 주는 음식은 너무 좋지만, 평생 해 달라고 할 수는 없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배우는 요리였기에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했다.
2020년 1학기(대학교 3학년이 되는 때)에 체코에서 공부할 것이 정해졌기 때문에, 2019년 2학기(대학교 2학년)에는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 보기로 했다. 그 전까지는 계속 통학을 했었다. 혼자 살아보기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건 좋은 것이었다. 물론 내게 나쁜 것은 하지 말자 주의이기 때문에, 기숙사에서 지낸다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거나 인스턴트만 먹으면서 지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쉽게도 기숙사에는 부엌이 없어서 배운 요리를 써먹을 수 없었다. 대신 학교 식당과 기숙사 식당을 잘 이용해 끼니를 해결했다.
누가 보면 모범생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그냥 내가 스스로 생각했을 때 지킬만 한 규칙이니까 지킨 건데 일탈 같은 건 하나도 안 해보고 온실 속 화초같이 지낸 사람이라고 결론짓는 이도 있다. 누구나 의견은 가질 수 있으니까 난 그에 대해 직접 뭐라고 하지 않는다. 통제력을 상실한 것이 가끔 쿨한 거라고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는데, 난 회의적이다. 어쨌든 일탈을 함으로써 내가 얻는 것보다 잃는 게 크기 때문에 하지 않은 것이다.
어쨌든 기숙사에서 사는 것은 학교에서 하는 여러 강연이나 행사 등에 참가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학교와 집이 멀기 때문에 못 해봤던 것들을 위주로 했다. 기숙사에 붙어 있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고, 기숙사에서 하는 영어회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또한 기숙사에서 운영하는 상담소에서 무료 상담도 받았다. 아직도 자아가 미숙했던 나에게 도움이 매우 많이 되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대학생이라면 적극 추천하고 싶다. 무료로 받을 기회가 있다면 놓치지 말자. 상담을 받으면서 많이 울었다. 상담 받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의지로 행동하는 건데 뭐가 부끄러워. 상담 받았다고 피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버려 둬라. 내가 힘들 때 곁에 있어 줄 사람이 아닌 것이다. 의지력이 어쩌구 뭐라고 하는 사람은 데려와라. 그리고 묻겠다. 그렇게 힘들 때 어디에 있었냐고. 상담 비용이나 내 주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