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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투티 Jul 15. 2023

대학 입시 후 남은 것들

튼 살, 근육 없는 몸, 나쁜 시력




대학 입시 후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오래 앉아있으면서 튼 허벅지 살, 허구한 날 감기 걸리는 몸, 근육 없음, 나쁜 시력, 스트레스성 여드름. 십대 때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몸을 돌보지 못했어요! 라고 말해봤자 아무도 책임져 주거나 사과해 주지 않는다. 운동을 병행하지 그랬어? 아니, 그럴 수 없었다. 운동까지 하면 쓰러질 것 같았다. 가족과 상담했을 때는 줄넘기를 하라는 결론이 났다. 당시 스스로 무언가를 기획하고 실천하는 능력은 없었다. 나가 봐야 작심삼일. 학교를 다녀오면 피곤함에 잠자기 바빴다. 나는 내향인인 줄도 모르고, 학교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기가 쫙 빨려도 돌아왔다. 그러고는 학교 끝나고 이런 저런 활동을 하는 애들은 도대체 무슨 체력이 있나 부럽고, 나는 왜 없나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그러고 보면 십대 때 관심을 가장한 몸에 대한 무례함을 자주 마주쳤었다. 나는 내내 몸이 빼빼 말랐었다. 고3즈음에는 오래 앉아 있느라 엉밑살이 쪄서 튼살이 생기기는 했지만 말이다. 찐 것보다 마른 게 좋게 여겨지는 사회인 건 알지만, 왜 내가 "기아" 소리를 들어야 하나.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 내 동아리 축제를 하는 도중이었다. 같은 동아리 안에서 교복 대신 축제 부스에 맞는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순간이었다. 딱 붙는 히트텍을 입은 나를 같이 옷을 갈아입던 애가 보더니 팍 웃으면서 "기아냐?" 라고 말했다. 수치심의 순간. 나는 뭐가 좋다고 바보같이 웃었다. 나는 내 몸에 자신이 없었다. 그때의 그 아이에게 이제 말한다. "넌 돼지냐?" 그 밖에도 후려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좀 먹어라. 왜 이렇게 기운이 없니. 난 그냥 내향적인 인간인데 그들은 말수 없는 나를 보고 안 먹어서 기운이 없다고 한다. 밥은 삼시세끼 꼬박꼬박 잘만 먹는데 말이다. 그들은 내가 어떻게 이런 몸에 이르게 되었는지 과정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과자를 절제해서 먹었고 밤늦게 무언가를 먹는 것은 피했다. 내가 노력한 바가 있으니까 살찌지 않았던 거다. 마름에 대해 스스럼없이 지적하는 그 분위기가 역겨웠다. 외모 지적으로 점철된 사회였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몸에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원망하며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게 너무 차가운 현실이라서 무서웠다. 변화란 건 마음먹었다고 영화처럼 한순간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 토할 것처럼 반복적이고 끈질긴 시도 끝에 겨우 눈에 보였다. 과거를 돌아보니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때는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지인에게 팔과 다리 운동 몇 가지를 배웠다. 특히 플랭크나 스쿼트를 제대로 배웠는데, 비실한 몸에 진절머리가 난 나는 그 뒤로 스쿼트만큼은 꾸준히 했다. 운동을 하면서 다리나 팔에 근육이 붙는 것을 눈으로 처음 확인했다. 나는 이제껏 허약한 사람이었는데, 내 자유 의지대로 건강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고등학생 때보다 개인 시간이 많아진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운동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거다. 거울에 비친 내 팔에 근육이 선명한 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 몸뚱이랑 앞으로 계속 살아가는 거구나. 이 몸 하나 믿고 살아야 하는구나. 그러면 몸을 돌보고 몸이랑 친해져야겠다.




스스로 자신 없는 신체 부위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내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내 몸 어디가 못낫다느니 감히 얘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대신 노력해 줄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운동은 학창시절 동안 내버려 뒀던 근육 없는 몸과 화해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싸움을 붙인 건 누구인가? 공부하라고 말했던 가족인가? 사회 분위기인가? 나 스스로를 탓하기에는 나는 자아가 형성되기도 전이었다. 그렇다고 원망만 하고 앉아있을 수 없었다. 세상은 무섭도록 무심하고 나를 바꿀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 완벽주의 – 라고 쓰고 실패공포증이라고 읽는 – 는 운동을 시작한 때부터 조금씩 허물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벽은 아직도 허물어지는 중이다. 왜냐하면 실패공포증은 살아가는 내내 솟아오르고 깎이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외모지적으로 자존감을 잃고 스트레스 받는 사람에게 이 글을 바친다. 여기 당신과 함께 목소리를 낼 사람이 있다. 하여튼 다음에도 내 체형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대놓고 얘기할 생각이다. "저는 외모 관련된 얘기 듣는 거 안 좋아해요." 라고. 물론 초면에는 상황 봐 가면서 말이다. 관계를 이어 나갈 만한 사람한테나 말하지, 말해도 듣지 않는 사람한테 목 아프게 말할 생각 없다. 반면 관계를 계속 이어 나갈 사람이라면 계속 듣느니 확실하게 밝히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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