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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투티 Oct 24. 2023

체코는 무슨 언어를 써? [2]

허공에 외치는 기분




영어를 처음 배워서 프리토킹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영어를 정규 교육과정으로 배운 게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인데, 대학교 1학년이 된 20살까지 10년 동안 영어공부를 했어도 프리토킹이 안 되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체코어로 프리토킹이 되기까지 10년을 잡아야 하는 건가? 물론 체코어만 집중적으로 공부할 테니 시간은 조금 더 단축될 수도 있지만, 프리토킹의 길은 멀었다.




그것 말고도 체코어과에 들어오면 체코어를 배워야 할 이유가 생길 줄 알았는데, 체코 자체에 대해서도 그렇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나와 코드가 맞지 않았다는 얘기다. 배울 이유가 없지만 나는 당시 목표 없이도 달리는 법을 체화한 까닭에 시험이라도 잘 보자는 마음에서 외우는 건 열심히 했다.




대학생 초반에는 일단 체코어과라는 특이한 타이틀을 즐겼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전공을 골랐다. 신입생 때는 한창 내 중고등학교 동창을 만나 서로의 전공 얘기로 대화를 할 시기였다. 네 전공은 어때? 공부 재밌어?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내게 다들 처음 물어보는 질문은 비슷했다. 체코는 무슨 언어 써? 내 전공 국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매우 희미했다. 그래서 기본적인 것부터 얘기해야 했다.




체코는 체코어를 쓴다, 유럽에 있다, 슬라브어족이다, 내륙국가이며 면적은 남한보다 조금 작고, 인구는 1020만인 작은 국가다. 체코 자체가 알려진 게 별로 없다 보니 내 전공이 어떤지 더 궁금해하지 않았고, 내가 배우는 언어가 얼마나 어렵고 불규칙이 많은지 등등 하소연할 수가 없었다. 혹은 체코에 대해 재밌는 것을 배워서 말해도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다. 그렇구나~ 하고 마는 반응이었다. 공감대를 만들 수 없으니까 전공에 대해 더 할 말이 없었다. 허공에 대고 외치는 기분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이제 체코인하고 대화 가능하겠네?" 해도 4년 내내 "아니요, 아직 어려워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어려운지 설명할 길이 없으니 나도 답답해 죽겠다. 그렇다고 내가 문법 설명하는 걸 들으려는 사람도 없다. 주변 사람들 모두 어려워해서 나는 누군가에게 설명하거나 체코어를 써먹을 수가 없었다.




언어 교환 어플도 시도해 봤지만, 얼굴 본 적 없는 사람과 일상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체코인이 한국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면 체코어를 써야만 하는 상황에 나를 던져 넣으면 실력이 늘까. 그런 고민으로 학교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체코에 한 학기 가기로 마음먹었다. 선배들을 보면 보통 3학년 1학기에 체코로 그 프로그램을 이용해 유학을 가기 때문에 나도 나갈 준비했다.




유학을 갈 대학교 3학년이 되기 전인 대학교 1학년과 2학년 때는 체코어를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배웠다. 나름 A나 A+를 많이 받는 우등생이었다. 그건 그냥 학점이나 잘 받자는 마음에서 한 공부였다. 목표 없이 달리기. 그래서 문법은 나름 빠삭하게 아나 말은 어버버 하는 한국식 언어교육의 결과물 그 자체가 되었다!




그래도 영어는 공부할 동기가 있었다. 좋아서 한 적은 없다. 1학년과 2학년 방학 때 학교에서 운영하는 2주 영어몰입교육 프로그램을 들었다. 영어로만 2주간 말하고 나면 나름 자신감이 붙는다. 체코로 한 학기 유학 갔을 때 적어도 영어는 사용할 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체코어도 영어도 못하면 그야말로 국제미아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가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의 몸부림이었다.




1학년 1학기 ~ 2학년 1학기까지는 1시간 40~2시간 거리의 학교로 통학하느라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동아리도 해 보니 재미가 없었다. 세상은 점점 힘들어지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을 해야 하고. 원래 인생이 그런 건가? 다들 자기 재능을 살려서 알바하며 돈도 버는데, 나는 사람들이랑 있으면 너무 기가 빨리고 피곤했다. 그렇다고 특출 나게 뭘 잘 하는 것도 아니었고 체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공부만 하다가 이도 저도 아닌 인간이 되어 버렸다. 내 전공과 관련해서 지속적으로 공감해 주거나 궁금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같은 과 친구들 빼고는 없었다. 이런 이유로 대학교 1학년과 2학년은 외롭고 자존감이 낮은 시기였다.







털어놓고 나니 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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