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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Apr 27. 2024

네가 피어 있는 한 봄

꽃마리는 작고 연약해도 아무도 모르게 우리 봄을 점령한다

꽃마리라는 이름을 가진 풀이 있다. 이 꽃을 소개하면 이렇게 작은 꽃이 있냐며 대부분 놀라는 한편 예쁜 꽃에 감탄하고 생존전략을 전하면 대견해한다.


줄기는 여리고 잎은 작아 식물 개체 하나하나만 보면 연약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알고 나면 어느 풀보다 흔하고 무성하다. 이름도 꽃만큼 예쁘다. 꽃줄기가 말려 있어서 ‘꽃말이’에서 가져와 소리 나는 대로 바뀌었다는 설명이 많다. 이름이 떠오르지 않으면 김말이, 계란말이, 멍석말이를 떠오르면 된다.

     

꽃마리는 우리 주변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자란다. 들판이나 시골 동네 주변은 물론 도시에서도 흔하게 자란다. 화단의 빈터나 길 가장자리는 말할 것도 없고 조경수 주변의 작은 빈 공간처럼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이나 벽과 도로 사이 빈틈같이 흙이 많지 않은 에서도 마다하지 않고 자란다. 도시화된 환경에도 적응하여 도시에서도 크게 번성한다.

    

이처럼 자리 잡은 곳을 탓하지 않고 때로 무리를 이루니 개체수로는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성공한 식물이다. 다양한 환경 적응력과 강한 번식력 같은 생명력이 뛰어나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자란다. 도리어 잘리고 뽑히고 밟히며 치여도 생존하는 근성이 있다. 이런 성공에는 나름의 전략이 있다.

     

꽃마리는 한두해살이풀로 겨울에는 잎을 땅에 붙이고 넓게 펼쳐 장미처럼 잎을 배열한 로제트로 추위를 견딘다. 로제트로 겨울을 나면 다른 식물보다 먼저 햇볕을 차지하고 이른 봄부터 꽃을 피울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몸 전체에 난 짧은 털도 겨울을 견디는 역할을 한다.

     

꽃 피는 방식이 독특하고 지혜롭다. 어린 고사리처럼 돌돌 말린 꽃줄기가 서서히 풀리며 길어지면서 아래부터 위로 차례로 새로운 꽃이 핀다(말린꽃차례). 꽃 하나가 피어 있는 시간은 길지 않으나 여러 개의 꽃이 차례로 피면서 개화기간이 상당하다. 꽃피는 기간을 늘려 꽃가루받이 기회를 늘리려는 속셈이다.

      

3월 15일 꽃이 핀 걸 관찰했는데 4월 25일까지 꽃줄기를 펼치며 피었고 아직도 말린 부분이 남아 있으니 한 개체가 두 달 가까이 꽃을 계속 피울 수 있다. 꽃줄기 하나에 차례로 달린 꽃이 대부분 25~30개에 달했다. 식물도감에는 개화시기를 3월~5월로 소개하니 봄철 내내 꽃이 핀다고 볼 수 있다.

     

꽃은 지름이 2~3mm 정도로 작아도 꽃받침, 꽃잎, 암술과 수술을 모두 갖추어 갖춘꽃으로 분류된다. 꽃 중앙에 있는 구멍 속에 암술과 수술이 있고 구멍 주위를 노란색 띠무늬로 장식하여 곤충을 유인한다. 또한 돌돌 말린 줄기를 펼치면서도 언제나 꽃은 옆이나 밑이 아닌 위쪽을 향해 피어 날아다니는 곤충이 쉽게 볼 수 있다.

     

관찰해 보면, 이런 유인책에도 곤충들이 많이 모이지 않는 편이다. 일정 크기의 곤충에게는 꽃이 작아 편히 꿀을 딸 환경이 못 되거나 가져갈 꿀이 적을 수 있겠다. 간혹 개미나 아주 작은 곤충이 찾기는 한다. 먼저 꽃이 피었던 꽃줄기 아랫부분에서는 하나도 빠짐없이 씨앗을 맺은 걸 보면 제꽃가루받이 가능성이 높다. 유전적 다양성도 좋지만 우선 번식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식물이 선택한 생존전략인 덩치 키우기, 꽃 화려하기, 씨앗 멀리 보내기보다는 꽃마리는 그런 궁리 없이 씨앗을 많이 만드는 방향을 택했다. 씨앗이 많은 데다 생명력이 좋아 주변을 순식간에 잠식하며 군락을 이룬다. 인해전술인 셈이다.

     

이런 전략들이 전부일리 없고 추측일 뿐이며 틀릴 수도 있다. 진실이 무엇이든 꽃마리는 남다른 생존력으로 도시의 빈터까지 차지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3월 15일, 초기로 돌돌 말린 부분이 확연하게 보임><4월 25일, 말린부분이 길게 풀리며 아래 부분에서는 열매를 맺음><무성하게 군락을 이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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