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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Jun 01. 2024

반짝이는 눈을 마주하다

동화구연을 하면서

아이들이 왔다. 책방으로 들어오는 긴 복도에서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동화구연을 듣기 위해 온 어린이집 아이들이다. 복도로 나가 맞이했다. 아이들이 먼저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해왔다. 그 인사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처음으로 동화구연을 하는 부담과 긴장이 풀어진 것은 그동안의 연습도 준비도 아닌 한순간 아이들의 환한 얼굴이었다. 귀여운 녀석들~

    

오늘 1시간을 위해 동화구연을 배웠다. 강사를 초빙하여 강의를 듣고 연습했다. 동화구연이 이런 것이고 여러분도 할 수 있다며 강사가 한 시범을 보고 이렇게 재미있구나 감탄했으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뒤따랐다.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워할 아이들을 상상하며 시작한 첫 수업은 기대와 달리 걱정을 키웠다.

     

동화구연은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등장인물에 맞추어 나이, 성별, 성격을 반영하고 동물일 경우 해당 동물의 이미지와 동화 속 캐릭터를 고려하여 목소리를 다양하게 변형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목소리에 더해 표정과 몸짓을 덧붙여야 제대로 된 구연이었다. 이는 배우들이 하는 연기와 다름이 없었다.

      

강습을 듣고 집에서 연습하고 함께 배우는 동료 앞에서 시연했다. 동화구연이 연기와 매한가지인 걸 알았다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을 텐데 남들 앞에까지 서니 더 고역이었다. 어설픈 내 모습과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동료를 보는 쑥스러움과 안타까움이 뒤섞였다. 그렇다고 피할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책방 취업 면접으로 동화구연을 하면서 느꼈던 설렘이 여전하고 1년 일하기로 책방과 계약했으니 약속은 지켜야 했다.

    

동료들 앞에서 하는 시연은 효과적이었다. 서로를 보면서 보완할 수 있었고 배울 수 있었다. 시연을 거듭할수록 엉성한 구연에도 뻔뻔해졌고 뻔뻔할수록 빈틈은 메워졌다. 나이 들수록 부끄러움이 없어져서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 이럴 땐 쓸만했다.

      

동화구연에 더해 구연에 필요한 인형 같은 자료를 만들어야 했고 종이접기도 알아야 했고 율동도 필요했다. 동요와 율동은 음치에다 몸치인 내겐 또 다른 난관이었다.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인터넷에 수많은 자료가 있었고 무엇보다 동영상을 통해 시각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정보는 어디에든 있으니 찾아내고 나름대로 묶으면 되었다.  

   

동화구연 일정이 정해졌다. 배운 것과 조언을 바탕으로 프로그램 구성을 구체화해 보았다. 아이들의 흥미를 위한 활동도 추가하고 다양한 구성도 필요했지만, 초보인 내가 해낼 수 있는 범위 내여야 했다. 연습하다 보니 아이들의 참여를 어떻게 끌어내는 방법도 고민되었다. 먼저 동화구연을 진행한 동료를 보면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말과 크고 웃긴 몸짓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앞에서 나도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드디어 아이들 앞에 섰다. 가벼운 이야기로 마음을 열고 눈을 맞추었다. 여기 오면서 선생님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꾸밈없이 맑은 눈에는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저 기대와 호기심이 어떻게 채워질지 잠시 머릿속이 복잡해져 머뭇거리면서 준비한 말이 아닌 다른 말을 했다. 그런데 준비한 말보다 상황에 맞게 하는 말이 더 자연스러웠다.

     

동화를 읽기 시작했다. 동화는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다. 내 실수도 줄이고 아이들이 잘 볼 수 있도록 동화를 크게 복사하고 코팅해서 철했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집중도가 높아졌고 간혹 큰 소리로 웃었다. 한 명이 웃으면 따라 웃었는데 유난히 잘 웃고 호응하는 아이가 있어서 그 아이와 눈을 자주 맞추었다. 어서 맞장구쳐달라는 절실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이야기는 “옛날 깊은 산속에 심술꾸러기 도깨비가 살고 있었어요”로 시작하는 구전동화다. 책 없이 외워서 구연했다.  도깨비를 그린 풍선을 들고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 한 아이가 풍선에 그려진 도깨비를 보며 귀엽게 생겼다고 말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얼결에 “도깨비가 어떻게 무섭게 변하는지 잘 들어보자”라고 했다. 그런데 동화는 정반대로 풍선에서 바람을 빼며 풍선이 점차 작아지도록 전개되었기에 도깨비는 갈수록 귀여워졌다. 아뿔싸!

     

며칠 후 동화구연을 한 번 더 했다. 인터넷 검색까지 해서 도깨비를 빨강 풍선에 무섭게 그렸다. 이번엔 먼저 아이들에게 도깨비가 무서운지 귀여운지 물어보았다. 여전히 귀엽단다. 귀여운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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