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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Mar 12. 2024

꼬마 손님들

할아버지가 미안해


내가 일하는 책방에는 꼬마 손님이 많다. 대개 엄마와 함께 온다. 유모차에 타거나 품에 안겨 오기도 하고 손을 잡거나 큰아이들 중에는 엄마보다 앞장서서 들어오는 책 좋아하는 아이도 있다.

     

책방에는 아이들을 위한 분리된 공간이 따로 있다. 동화책을 앉아서 읽을 수 있고 아이 몸에 맞는 키 작은 의자도 있다. 많진 않으나 판매용이 아닌 기증받은 책도 있어 더 편하게 읽을 수 있다. 몸을 제 맘대로 하고 볼 수 있는 구조물 구석지게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다양한 동화책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부족하지만 즐겁게 찾아와 책을 읽으니 좋다.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엄마들이 많다. 책 읽어주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행복하다. 가장 행복한 소리다. 엄마도 아이에게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간혹 등장인물이나 동물에 따라 목소리를 바꿔 가며 읽는 소리를 들으면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엄마는 못 하는 게 없다.

    

동화책은 찾는 사람에 비해 성인 도서보다 판매량은 많지 않다. 요즘엔 시립도서관이나 작은도서관 같은 공공도서관에서 동화책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 빌려보고 시설도 잘 갖추고 있어 많이 찾는 편이다.

     

어느 날, 3~4학년쯤 보이는 초등학생과 엄마가 왔다. 아이는 추천도서 코너에서 한 권을 골라 안쪽에 마련된 긴 책상으로 갔다. 책상은 대여섯이 앉아 책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길고 서가에 가려지고 안쪽에 있어서 쉬거나 독서하기에 맞춤하다.


더욱이 남쪽을 향한 유리창에 맞대어 있어서 손님들이 즐겨 찾는 공간이다. 오후에는 내려진 커튼을 건너 들어온 햇살부드럽다. 슬픈 이야기를 읽는 순간에는 위로받을 수 있을 듯하고, 시를 읽는다면 시에서 그리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고, 굳이 책을 읽지 않고 창밖만 멍하게 바라보아도 좋은 곳이다. 이곳에 앉아 있으면 나는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은 겨울 소나무 같은 생각이 든다.

    

두어 시간 지나고 그곳에 갔더니 아이가 지금껏 혼자 책을 읽고 있었다. 엄마는 잠깐 볼일이 있어 나갔단다. 마음 놓고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책방이라 생각해 주니 다행이다. 아이는 천연덕스럽게 엄마와 통화한다며 내게 휴대폰을 빌려달란다. 아이도 나를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로 보아주니 참 다행이다. 언제부터인지 마음속으로는 늘 할아버지가 되고 있다.

    

아직 바람이 차던 날, 문 닫는 시간 10분을 남겨두고 아빠 손을 잡고 아이가 들어왔다. 곧 마감할 시간이라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드물게 아빠와 함께 왔고 책을 보는 아이 눈빛이 반짝였기 때문이다. 10분이 넘게 지났다. 뒷정리하고 모처럼 있는 지인과 만날 약속에 맞추려면 지금 서둘러야 했다. 아빠의 책 읽어주는 굵은 소리가 두런두런 나지막이 들렸다.

     

동화 이야기의 끝이 궁금한 채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다 읽기를 기다렸다. 읽은 책을 책꽂이에 넣는 순간을 포착했다. 문 닫을 시간이 지났다는 말을 얼버무리며 들어가는 소리로 했다. 잘 알아듣지 못하고 아이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할아버지가 미안해, 책방 문을 닫아야 해서”

내 손녀가 아닌 다른 아이에게 나를 할아버지라고 지칭했다. 처음이지만 자연스러웠다. 최소한 아이들에겐 나를 가리켜 할아버지라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생각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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