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을 통한 지성과 감성의 공존
2023. 04. 15 ~ 2023. 07.02
대학로 TOM 극장 1관
섬으로 간 나비 x 네버엔딩플라이
박유덕, 유승현, 원우준, 임별, 강찬, 김지온, 김현진, 안지환
1. 들어가며
2. 스토리 라인
3. 대비를 통한 연출
4.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헤르만 헤세
5. 나오며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아는 가장 유명한 문구 중 하나이며, <데미안>하면 떠오르는 문장이다. 유명작이라 작가 헤르만 헤세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데미안>을 제외한 그의 다른 작품들도 뮤지컬화 되었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작가의 성장기가 투영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다.
사형이 집행될 골드문트 앞에 누군가가 나타난다. 그는 바로 수도원장 나르치스였다.
그들은 사실 과거에 마리아 브론 수도원의 수습 교사 나르치스와 소년 골드문트는 친구였었다. 하지만 친구가 될지언정 그들은 사상적으로나 기질적으로나 많이 달랐다.
그러다 골드문트는 수도원을 나오게 된다. 아름다운 외모의 골드문트는 많은 여자를 만나고, 불륜을 저지르는 방탕한 삶을 살았었다. 그러다가 조각가의 제자로 들어가기도 하지만 결국 방랑을 이어간다.
그러다가 흑사병이 퍼져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신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골드문트는 행복했던 순간도 잠깐 있었으나, 결국 영주의 부인과 밀회를 가지고 사형을 당할 위기에 처하고 그때 나르치스와 재회한다.
나이가 든 골드문트는 여성들이 자신을 대하는 모습이 옛날 같지 않음에서 매력이 죽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 다시 조각을 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나르치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
남겨진 나르치스는 골드문트를 보며 생각에 빠진다.
뮤지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연출법은 대비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성질과 사상의 대비, 시각적인 대비를 내세웠다.
시각적 대비로는 가장 먼저 배우와 조명의 대비다. 가장 먼저 배우 분장부터 다르다. 나르치스 역을 맡은 배우들은 대체로 검고 단정한데 골드문트 역의 배우들은 화려한 금발에 옷차림 또한 가볍다. 화려한 골드문트와 단정하고 차분한 나르치스의 다른 성질과 상황이 한 번에 보이는 분장이다. 조명도 이를 따라 이성적인 나르치스에게는 차가운 파란색 조명, 자유로운 골드문트에게는 따뜻한 노랑 조명이 사용된다. 이 둘의 차이가 극을 진행함에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 검소하고 이성적인 신의 종인 나르치스와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인 골드문트의 다름이 극을 진행하는 원동력이 된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작가 헤르만 헤세의 삶이 많이 투영된 작품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작가이며, 둘은 이성과 감성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떠나고 슬퍼한다. 성질이 아주 다르지만 그가 슬퍼함은 단순 친구라서라기보다는 극과 극은 통한다고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둘은 이성과 감성을 의미하고 인간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는 존재라 하나만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떠난 사실에 슬퍼하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보여주는 부분으로는 신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부분이다. 골드문트의 자유분방함에 이끌리고 병이나 전쟁으로 죄 없는 선량한 사람들이 죽으니 신의 뜻인가 의구심을 가진다. 이 또한 나르치스가 나타내는 지성도 완벽하지 않음을 보인다.
우리는 가까워질 수 없어. 마치 해와 달, 바다와 육지가 가까워질 수 없듯이. 이봐, 우리 두 사람은 해와 달, 바다와 육지처럼 떨어져 있는 거야. 우리의 목표는 상대방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식하는 거야. 상대방은 있는 그대로 보고 존중해야 하지. 그렇게 해서 서로가 서로를 대립하면서도 보완하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中
골드문트도 마찬가지다. 골드문트가 말년에 들어서 태도가 달라지는 것도 방황하며 겪은 경험들을 통해 정신적 성숙을 겪어서다. 골드문트의 삶은 싱그러웠다가 저무는 인간 삶 그 자체를 보여주는데 젊을 때는 휘몰아치는 폭풍같이 열정으로 불태 올랐다가 성숙을 거쳐 마냥 불타오르기보다는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둘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작가를 의미하는 나르치스는(골드문트도 작가를 나타내나, 작가의 일부로 생각했다) 항상 이성적으로 살았으나 한편으로는 골드문트처럼 열정적, 감정적이기를 원하고 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기도 했던 지난날을 담고 있다.
우리는 상대를 구분하고 분류하려 한다. MBTI가 유행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건 T와 F의 차이점을 두고 생기는 이야기다. 성향이 같은 사람과는 공통점 덕분에 쉽게 친해지고 다른 경우에는 조심스러워진다. 타인을 이해하기 쉬워진 면도 있겠으나 이해하려는 노력이 줄어든 부분도 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한다.
인간은 지(知)와 감성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함을 골드문트와 나르치스와의 우정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넓게 확장해서 서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이야기로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