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로 무기를 씻을 수 있을까?
2024.06.18 ~ 2024.09.08
예스24아트원 1관
엠비제트컴퍼니
박성훈, 박정원, 전성우, 홍승안, 이진희, 김국희, 전성민, 오대석, 박동욱, 견민성, 송상훈, 김세환, 허영손, 금보미, 김지혜, 진초록, 이서현, 김슬기, 박수야, 최정우, 곽다인
1. 들어가며
2. 스토리 라인
3. 연출법
4. 장총과 나나, 그 이름하여 주인공
5. 장총이 죽인 사람, 빵야가 살린 사람
6. 나오며
https://youtu.be/7u_lFL33u_g?si=qs47HqrINxZ9wVmd <<소개 영상
2024년에 좋았던 작품을 꼽으라면 그중 하나는 <빵야>일 것이다. ‘빵야’라는 단어에 흔히 총소리를 많이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다. 빵야는 총, 그것도 아주 오래된 99식 소총에 관한 내용이다.
한물간 작가 나나(나은나)는 소품 창고에서 아주 오래된 소총 한 자루를 발견한다. 심지어 모형이 아니라 발포 가능한 실제 총이었다. 나나는 이 총에 대해 작품을 써보기로 한다. 나나는 글을 쓰기 위해 총에 대한 조사를 하고 소총에게 ‘빵야’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빵야의 이야기를 듣는다.
빵야는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99식 소총으로 생산된 후 일본 관동군 기무라를 첫 주인으로 맞이한다. 기무라는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에 순경에서 일본군으로 입대한다. 그는 조선인임에도 조선인들 악독하게 핍박하는 일제의 앞잡이였다. 특히 길남을 싫어하여 괴롭혔던 그는 마을에 소탕 작전이 내린다는 소식을 먼저 들어 주민들을 대피시키던 길남과 싸우다 죽이고 도망친다.
길남은 같이 놀던 살구를 방한복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로 빼앗긴 바닷가 출신 소년이었다. 그는 군대에 징집되어 부상을 입어 기무라가 있는 곳으로 오게 된다. 하지만 관통상으로 사망하고, 장총은 팔로군 선녀에게로 넘어간다.
선녀는 독립군을 숨겨줬다는 이유로 일제에게 어머니를 잃고 호랑이 사냥꾼 아버지와 함께 일본군은 죽이는데 뛰어든다. 하지만 아버지를 잃고 이후로도 저항을 이어가다가 광복을 맞이한다. 싸울 적이 사라진 그녀는 아버지의 엄지 발가락을 선녀 바위에 묻어주기 위해 배를 타지만 그 배에 광복군으로 변한 기무라가 있었다. 기무라에게 복수하려하지만 실패, 장총은 무기 검사를 거쳐 부산으로 향하소, 국방경비대 문근의 총이 되어 제주 4·3 사건을 거쳐 서북청년단의 신출을 거쳐 한국 전쟁으로 흘러 들어간다.
빵야는 꽃담을 사이에 두고 친구가 된 원교와 아미를 주인으로 맞이한다. 한국 전쟁 발발, 원교는 국군으로 아미는 북한군에 입대해 서로에게 총을 겨눈다. 하지만 아미도 죽고 빵야도 방아쇠가 망가진다. 빵야는 살기 위해 같은 부대원을 죽인 인민군 동식에게 주워진다. 이때 빵야를 고치기 위해 호른 부품이 대신 달리게 된다.
동식은 이념 때문에 개죽음을 하려는 분대장을 죽이고 한국군에 귀순한다. 하지만 빨치산 딱지를 뗄 수 없어 인민군 출신으로 구성한 보아라 부대를 제안, 활약한다. 그러나 동식이 배신할 때 다 죽이지 못한 분대원 설화의 손에 죽고, 빵야는 지설화의 손에 넘어간다.
설화는 소년병으로 노련한 실력자였다. 어른이 죽고 친구들도 죽고 혼자 살아남아 휴전을 맞이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줄도 몰랐고 설화를 살아남게 한 고막은 이미 찢어져 있었다. 결국 설화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고 거쳐 빵야가 다시 기무라에게로 돌아온 후, 전쟁이 소재인 영화판에서 구르고 구르다 서류 실수로 소품 창고실로 들어오면서 나나를 만난다. 그리고 나나가 빵야의 이야기로 쓴 대본에 한 방송사가 반응을 보인다.
작중 등장인물 나나가 옴니버스식으로 대본을 구상했기 때문에 <빵야>도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장총이 거쳐온 주인은 17명 정도이지만, 그중 9명에 집중한다.
가장 특이한 점은 빵야가 사람이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빵야를 사람 배우가 연기하지만 빵야는 극 중에서 엄연히 장총, 사물이다. 무대에도 이 장총이 등장하지만, 보통은 장총을 철저히 사물로 대해 작품의 주제 의식을 대변하는 상징물로 연출하겠지만 연극 <빵야>에는 배우가 장총 빵야를 연기하는 보기 드문 선택을 했다. 그리고 이 연출은 관객에게 모진 세월이 어땠는지 감정적 공감에 효과적이었다.
그러기 위해 빵야 역의 의상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일제 강점기 때, 인천 조병창에서 태어난 99식 소총 빵야의 정보는 옆구리의 총열 번호 77020, 목에 새긴 문양, 세상에 태어날 때의 고통과 일제가 전쟁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의미의 국화꽃 문양까지 일종의 출생 정보다. 그리고 호른 부품이 달린 오른쪽 가죽 장갑은 빵야의 방아쇠다.
나는 죄라는 꽃을 달고 전쟁으로 향했어. - <빵야>
무기로 태어난 것에 후회하는 빵야가 길남이 기무라를 향해 망설일 때 방아쇠를 당기라고 종용하는 모습, 전쟁이 끝났으나 그 사실조차 모르는 빨치산 설화가 자살을 선택할 때 끝까지 저항하는 빵야의 몸부림을 빵야 역의 배우가 상황과 심경을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또 <빵야>는 청각적 효과를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다. 총이 발포할 때, 녹음한 총소리를 사용하지만, 배우가 육성으로 ‘쾅!’ 소리를 낸다. 배우가 빵야를 연기하기에 할 수 있는 표현으로, 배우가 쾅! 소리와 상대 배우에게 이동하여 총알이 누구에게로 향하는지, 누구를 죽였는지 직접적으로 나타낸다.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빵야와 나나가 같이 서술한다. <빵야>의 이야기는 빵야의 과거이면서, 작가 나나가 집필하고 있음의 표현인데 나나가 빵야의 경험에 공감하고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다.
또한 대비를 통해 빵야의 비극을 강조한다. 쾅! 쾅! 하는 크고, 파괴적인 발포 소리에 대비로 악기 소리를 내세웠다. 악기는 빵야가 부러워하는 대상으로 악기는 감미로운 소리를 연주하지만, 빵야는 총이기에 쾅! 소리를 내면 생명이 죽는다.
빵야가 아미의 손가락과 함께 날아간 방아쇠를 고치기 위해 철공소를 갔을 때 망가진 악기들이 잔뜩 쌓여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총과 악기 모두 인간이 사용하는 사물이다. 빵야는 같은 재료인데도 사람을 죽이지 않고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와 처지가 정반대다. 호른 소리를 조절하는 손잡이를 붙였음에도 빵야는 계속 사람을 죽여야 했다.
그러나 빵야의 소원은 마지막에 나나가 들어준다. 나나는 장총의 마지막을 장식해주기 위해 연주회를 준비한다. 하모니카, 호른, 트럼펫, 기타... 여러 악기들이 모여 연주하는데 빵야도 악기로써 참여한다. 그러나 소총 빵야의 구조를 바꾼다거나 하지 않는다. 빵야는 그 상태 그대로 연주회에 악기로 참여한다.
이 연주회에서 오랜 시간을 견뎌온 빵야는 터져버린다. 마지막 한 발을 쏘면서 연주회에 악기로 소리를 내고 온몸이 부서진 것이다. 악기가 부러웠고, 편안해지고 싶다던 빵야가 더는 무기로 남아있지 않게 되면서 자유를 얻는다. 빵야가 영화 소품으로 사용되는 건 이 땅에 전쟁이 옛말이 됐으며, 그것을 창작할 정도로 무게가 가벼워졌음을 나타낸다. 마지막에 몸이 부서져도 빵야가 웃을 수 있었던 건, 전쟁과 무기의 상징임을 내려놓을 수 있어서 일 것이다.
<빵야>는 어느 역할이든 소외시키지 않는다. 그중 빵야와 나나가 주인공을 내세웠는데 빵야와 나나의 역할은 관객이 몰입할 대상이다.
은하수를 끌어와 무기를 씻을 수 있을까? - <빵야>
빵야는 한반도에 일어난 가슴 아픈 시절을 살았던 조선인이면서 들려주는 화자이고, 생존자라 관객은 그 시대의 참혹함을 경험한다. 빵야의 역할은 우리가 책과 영상으로만 봐온 그때 그 일들을 생생하게 전하는 전달자이다.
다른 주인공 나나는 현대의 청년이다. 5년 동안 새 작품을 쓰지 못한 한물간 작가라 빵야와의 작품이 나나에게 매우 중요하다. 나나는 작품을 집필하면서 창작에 대한 방법을 고민하고, 역사로 글을 쓴다는 것에 작가적 고민에서 시작한 책임감에 대해 고찰한다. 그러면서 글이 팔리기 위한 방향대로 수정하고 비싼 값에 빵야의 이야기를 팔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나나는 팍팍한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를 대변한다. 나나가 겪는 고민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이 시기 청년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나나가 기뻐하고, 고생하고 고민하는 모습에 관객은 나나에게 자신을 이입하기도 한다. <빵야>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잘 섞여 어떤 사람은 빵야에게, 어떤 사람은 나나에게 공감 가능하다.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거라면 좀 더 나았을까? 아니야. 총은 총일 뿐이야. -<빵야>
빵야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확실히 하고 있다. 결국에는 사람이 죽는 건 똑같다는 무력감에서 비롯한 대사다. 냉철한 시선으로, 폭력 그 자체에 집중시킨다.
총이 파괴적이지만 나쁘다고 몰아갈 순 없다. 평화는 스스로를 지킬 무력이 충족됐을 때만 가질 수 있고 인간 본성 때문인지 몰라도 평화를 위한 완전 무장해제로는 평화를 지킬 수 없다. 그 총을 어떻게 사용하냐는 것이 본질이다.
그리고 또 다른 본질은 빵야가 겪어온 일련의 사건들은 인간과 인간이 싸운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는 조선을 탄압하는 일제에 맞서 싸웠고 한국 전쟁과 같은 좌우익의 대립은 이념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상대를 죽인 민족상잔의 비극이다.
일제의 가혹하고 잔인한 폭력과 억압,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했던 좌우익의 대립. 누가 옳고 그르다를 지적하는 게 아닌 모두가 입은 상처에 대한 이야기다. 판권을 팔라는 제작사의 요청에 나나가 응하지 않은 것도 빵야와 나눈 진솔함을 바꾸고 싶지 않아서일 거다.
내가 이야기 하나를 힘들게 쓰면 힘든 사람 하나가 잠시 쉬게 될지도 몰라요.
내가 이야기 하나를 아프게 쓰면 아픈 사람 하나가 조금은 나아질지도 몰라요. -<빵야>
어이하면 장사(壯士)를 구하여 하늘의 은하수 끌어다가
갑옷과 병기 깨끗이 씻어 영원히 쓰지 않게 할지. -<세병마행>, 두보
나나는 중국 시인 두보의 작품, <세병마행>를 인용하며 전쟁과 싸움이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음을 지적한다. 보통 총에 대해 강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전쟁 때 사람을 죽이고, 사냥용으로 사냥감을 죽이는 데 사용해서다.
관동군-동북항일연군-팔로군-국방경비대-제주 4.3사건-여순사건-6.25 전쟁(학도병, 의용대, 지게 부대, 보아라 부대, 소년돌격대)까지 빵야가 거쳐온 고된 시간이다.
빵야는 사람을 죽이는 것에 힘들어한다. 그것은 인간을 죽이는 행위가 정신적 고통을 주는 파괴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짓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그것이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특이한 상황이다. 생명을 죽이는 목적의 총인 빵야가 가장 인간적이고 약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빵야의 고통에 공감한다.
빵야는 모진 세월을 견뎌온 장총이면서 동시에 한반도에서 살았던 우리 선조이기도 하다. 빵야는 총이기에 다른 사람을 쏘고 싶지 않아도 선택권이 없다. 고장나 쏠 수 없게 되어도 누군가 수리하면 결국 쏴야 한다. 일제의 탄압, 좌우의 대립에 고통받고, 누군가를 죽여야만 했던 민간인들과 빵야는 다를 게 없다. 빵야는 설화가 죽음을 선택할 때 몇 번이나 거부했듯이 모두가 자기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렇기에 끝까지 살아남은 기무라는 나쁜 의미에서 중요하다.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리고 새기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빵야>
별똥별이 똥 싸는 이야기이면 어떻고 시냇물의 물고기가 뻐끔뻐끔하는 이야기이면 뭐 어떤가. 덕분에 나나는 빵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빵야는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빵야는 나이로 따지면 노인이다. 상처 입고 지쳐서 신경질적인 빵야, 소년 같고 나나를 따뜻하게 대하는 빵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퇴역 군인 같은 빵야, 배우들은 그들만의 노선이 뚜렷했다. 눈물과 상처로 가득한 세월을 보냈으나, 젊은 배우들을 기용했다.
그때 그 일들이 빵야가 젊어서 일수도 있지만, 세상을 모르고 가장 약하고 순수해서라는 이유로 생각했다.
*C-STRAW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s://c-straw.com/posts/1778
*예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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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빵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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