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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토미 Jun 27. 2023

아무리 몰랐어도, 함부로 내뱉는 건 잘못이잖아요.

애견카페 옆자리 사람이 우리 강아지의 험담을 했다.


우리 강아지 심바




 단골 애견카페가 있다. 강아지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실내 카페인데, 날이 흐리거나 산책하기 힘든 날에는 그곳에 심바를 맡긴다. 친절한 사장님과 매니저님, 그리고 그동안 친해진 심바의 강아지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믿고 맡기는 곳이다. 가끔은 심바만 맡기지 않고 나도 같이 가서 커피를 마시며 두 시간 정도 강아지들 노는 걸 구경하고 만지며 힐링을 한다. 피곤한 날에도 강아지들을 보다 보면 이상하게 웃음이 나고 기운이 난다. 1년 전의 나는 상상도 못했을 내 모습. 심바 덕에 강아지와 함께하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게 되었다.



 어느 주말, 날이 흐리고 비가 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심바와 함께 그 애견카페로 향했다. 그 날도 강아지들은 많았고, 강아지든 사람이든 너무나 좋아하는 심바는 신이 나서 카페 안을 총총총 걸어다녔다. 강아지 보호자들 뿐만 아니라, 반려인은 아니지만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이 오는 유명 카페라 그 날도 테이블 좌석이 거의 꽉 찰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나는 구석에 겨우 자리를 잡았고, 내 옆 테이블에는 20대로 보이는 커플이 앉아 있었다.



 강아지는 많았는데 다들 오전부터 카페에 있었는지 심바랑 신명나게 놀아주는 친구는 없었다. 그러다 심바는 한 친구를 만났고 그 강아지에게 같이 놀자고 다가갔다.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은 알텐데, 강아지들은 서로 엎치락뒤치락하고 술래잡기를 하면서 논다. 심바를 알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강아지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서로 싸우는 게 아닌가 걱정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건 강아지들이 노는 모습이었고, 이제는 잘 알기 때문에 오해하지 않는다. '아이고~ 둘이 잘 노네~' 기분 좋게 바라보는 준반려인이 되었다. 



 심바보다 몸집이 작았던, 하늘색 니트를 입은 작고 하얀 강아지에게 심바는 놀자며 다가갔고 그 강아지가 왈! 하고 짖자 쫄보 심바도 놀라서 왈! 하고 짖었다. 그러다 둘이 엎치락뒤치락 하더니 그 작은 강아지가 먼저 도망을 갔고 심바는 따라갔다. '오늘은 심바가 먼저 술래가 되었나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같이 지켜보던 옆 커플이 이런 말을 했다. "어우 쟤 왜 저래."



 ..? 뭐지? 저기서 말하는 '쟤'가 설마 심바인가? 

당혹스럽고 황당했으나 내가 잘못 들었나? 착각했나? 의아해하며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그 강아지와의 놀이가 끝난 심바가 내 쪽으로 총총 걸어왔다. 그러다 그 커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사실 그 커플 여자의 무릎에서는 한 강아지가 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 애견카페의 단골 강아지 중 하나인 심바의 단짝 친구였다. 심바는 자고 있는 친구를 발견하고는 잠깐 걸음을 멈춘 것이다. 그런데 그 때, 커플 남자가 심바를 보더니 말했다. "너는 오지마. 무서워." 



 내 귀를 의심했다. 저 남자 뭐지? 내가 심바 데리고 들어오는 걸 못 봤나? 내가 심바 보호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저렇게 말하는 건가? 아니, 모른다고 해도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건가? 강아지도 귀가 있는데 본인한테 안기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그 앞에 섰을 뿐인데 오지 말라고 정색하며 말할 일인가?



 정말 불쾌했다. 하지만 한 번 더 참았다. 그래. 무서울 수도 있지. 나 역시 몇 년 전만 해도 강아지를 무서워 했으니까. 아니 근데, 좀 다르지 않나? 나는 강아지가 무서울 때 애견카페에 내 발로 들어오지 않았어. 저 사람은 뭐야? 강아지를 차별하는 건가? 한 번이라도 짖은 강아지는 무섭고, 조용히 자는 강아지만 좋다는 건가?


점점 속에 열이 오르고 있었으나 '됐다. 신경쓰지 말자.' 또 참았다.


 잠시 후, 심바는 다른 강아지 친구에게 다가갔고 서로 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커플. 남녀가 쌍으로 심바를 정말 싫다는 표정으로 노려보길래 대체 이 사람들은 우리 강아지를 왜 이렇게 째려보나 싶었다. 그 때 남자 왈, "저 갈색 푸들이 문제야." 그리고 이어지는 여자의 동조.


 속에서 천불이 났다. 저기요, 푸들 아니고 말티푸고요. 대체 우리 강아지가 뭘 잘못했길래 당신들한테 '문제'라는 말까지 들어야 하나요? 목끝까지 올라왔으나 바로 맞은편에 다른 커플이 앉아있어서 또 참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사람들한테 내가 느낀 지금 이 불쾌감을 전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인생을 살면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생각보다 자주 온다. 그럴 때마다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 있다. 바로 '어떤 선택을 했을 때 덜 후회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오늘 저 커플에게 나의 불쾌감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나는 몇날 며칠을 끌어오르는 분노로 힘들어 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심바를 '문제'인 강아지로 남게 했다는 사실 때문에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조건 말해야지.


 마침 약 10분 후, 커플은 파스타를 먹으러 가자며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웃으며 밖으로 나가는 그들을 나는 곧바로 따라 나갔다. 그리고 그들을 불러세웠다.



"저기요. 죄송한데, 혹시 강아지 키우세요?"

"..네?.. 아니요."

"저 아까 그 갈색 푸들 보호잔데요. 강아지들이 아까처럼 하는 거 서로 놀자고 그러는 거거든요."

"..아..."

"근데 갈색 푸들이 문제니 어쩌니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까 제가 너무 불쾌해서요."

"아... 네.."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옆에 있는 보호자도 듣고 강아지도 다 듣는데 너무 불쾌하네요."

"아 네.. 죄송합니다.."

"조심해주세요."



 짧게 용건만 말하고 들어왔다. 사실 맘같아선 '내뱉는다고 다 말이 아니다, 얻다 대고 문제니 뭐니 함부로 지껄이냐, 강아지들이 노는건지 싸우는건지도 잘 모르면서 문제라고 단정짓고 말하는 당신들이야말로 문제다, 내가 당신들 얼굴에 대고 문제있는 것들이라고 하면 기분 좋냐, 우리 강아지한테 사과해라' 등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강아지도 다 듣는데"라고 말하는 순간 정말 우리 심바가 듣고 혹시 상처받았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울컥해서 더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분노를 전달하다가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합리화하거나 잊어버릴까봐 '당신들은 무례했지만 나는 당신들에게 무례하게 말하지 않았다'라는 걸 보여주고도 싶었다. 



 내가 진리로 생각하는 말 중 하나는 '사람은 보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보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아마 그들은 심바가 강아지와 노는  모습이 나쁜 모습으로 보였겠지. 잘 모르면 그럴 수 있다. 오해할 수도, 착각할 수도 있다. 모르는 건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모른다는 이유로 함부로 내뱉는 건 잘못이다. 특히나 그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면 그건 정말 큰 잘못이다. 내 얘기를 들을 때, 그 커플의 일그러지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지함과 무례함이 나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었는지 깨달았고 부끄러움도 느끼는 듯 보였다. 



 나는 그들이 적어도 그 날 파스타를 먹으며, 데이트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며, 자기 전 누워서 하루를 돌아보며 자신들의 행동이 얼마나 부끄럽고 잘못된 일이었는지 느꼈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그들에게 했던 마지막 말처럼, 앞으론 제발 조심했으면 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데, 제발 모르면 닥치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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