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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토미 Jul 11. 2023

나는 초등학교 소수자다.

교무부장의 말실수로 깨닫게 된 나의 위치


나는 초등학교 교사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8년차 교사다.

그리고 나는, 우리 학교에서 소수자다.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방법은 한 가지다. 바로 교대를 졸업하고 임용고시에 합격하는 것.

교육대학교 뿐만 아니라, 이화여대 초등교육과 또는 제주대학교 초등교육과를 졸업하는 경우에도 교대를 졸업하는 것과 같다.


임용고시는 국가고시다. 각 지역에서 실시하는 임용고시에 합격하면 그 지역의 교사가 된다. 즉, 서울시 임용고시를 합격하면 서울시 교사가 되고, 경기도 임용고시를 합격하면 경기도 교사가 된다.



지방마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교육대학교가 있다. 지방의 교육대학교를 졸업하는 경우, 그 교대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의 임용고시를 보는 경우가 많다.




나는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춘천교대를 졸업했다. 그래서 나의 대학 동문 중 대부분은 현재 강원도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나의 같은 과 동기만 봐도 강원도 교사가 가장 많다.


그런데 나는 서울시의 초등교사다.


내가 서울 임용고시를 본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그 중 하나는 (예상 가능하게도) 서울에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를 했고 감사하게도 한 번에 합격하여 지금까지 서울에서 초등교사를 하고 있다.



나처럼 지방 교대를 졸업하고 서울 임용고시를 통과해 근무하는 서울시의 초등교사는 많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역시나 서울교대를 졸업한 사람들이다.




서울교대를 졸업한 대부분의 교사들 사이, 나는 소수자다.


그 사실을 크게 인지하고 살지는 않았다.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신규 발령을 받아 근무하던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학교의 교무부장은 내가 지금껏 본 모든 교사들 중 가장 무능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무부장은 승진을 하여 교감, 최종적으로는 교장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아주 중요한 보직이며 그만큼 일도 많고 책임도 다. 하지만 당시의 교무부장은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람이었고, 내가 태어나서 본 가장 일머리 없는 사람이었다.

간단한 예로, 업무에 관해 조언을 구한 뒤

"그부장님께서 말씀해주신 내용 참고해서 ~~이러이러하게 처리할게요."라고 말한 내게

교무부장은 다급히 "아니에요, 선생님. 선생님이 판단해서 하세요. 나는 그냥 지나가는 행인이에요."라고 했다.

본인이 '지나가는 행인'이라니.. ;; 어떻게든 자신에게 책임이 생기는 걸 회피하고자 하는 모습에 신규교사였던 나조차 '저건 아니다'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제의 사건이 발생했다.



교무실에서 복사를 하고 나오던 나는 우연히 교무부장 마주쳤다.

그녀는 특유의 정신없는 말투로 내게 말했다.

"선생님, 잘 만났다. 나 뭐 좀 부탁하려고. 자기네 학년 선생님들한테 이번 주 회식 참가 할건지 말건지 물어보고 알려줘요~"



응..? 이번 주 회식..? 이번 주에 회식이 있었나?

대부분의 또래 친구들과는 달리,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기에 회식을 좋아하는 나는 너무 의아했다. 내가 회식을 까먹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 주에 친목회 회식이 있었나?... 아닌데... 뭐지..?'



의아해하는 나를 바라보던 교무부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서울교대 맞지?" 라고 물었다.



아..! 그때서야 깨달았다.

이번 주 회식이라는 게 서울교대 동문 회식을 말하는 거였군.


학교마다 동문회가 있는 걸 알고 있었기에 곧바로 알아차렸고, 평소 교무부장의 정신없음은 더더욱 잘 알고 있었기에 '아, 이 분이 날 서울교대 동문으로 착각했구나' 싶었다.

그래서 바로 말씀드렸다. "아! 저 서울교대 아니에요. 저 춘천교대 나왔어요.!"



착각할 수도 있지~. 그 때까진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뒤이은 교무부장의 말은 너무나도 황당했다.




"어머! 자기야 미안해. 나는 자기가 똑똑하고 야무져서 서울교대인 줄 알았어~"




.....?........

똑똑하고 야무져서 서울교대인 줄 알았다니...? 이게 무슨 말이지..?



말을 내뱉고 교무부장은 또 정신없이 휙 교무실로 들어가버렸고, 나는 한동안 자리에 벙쪄 있었다.

똑똑하고 야무져서 서울교대인 줄 알았다는 말은, 서울교대가 아닌 사람은 무식하고 야무지지 못하다는 말인..

저 교무부장은 본인이 한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나는 다. 아마 교무부장은 나에게 '똑똑하고 야무지다'는 '칭찬'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서울교대가 아닌 나를 서울교대로 착각했다는 게 굉장히 민망하고 미안했던 것 같다. 사실 뭐.. 그렇게까지 미안할 일인가? 착각할 수도 있지.

사실 정말 미안해야 하는 건 방금 내뱉은 말인데. 그녀는 아마 평생 무엇이 잘못된 행동이었는지 깨닫지 못할 것이다.



가만히 곱씹을 수록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같은 학교에 근무 중인 A와 B를 불러 방금 있던 일을 이야기했다.

"나 방금 진짜 어이없는 일 있었어. 글쎄 교무부장이~"

나의 말을 다 들은 후, A와 B는 극명하게 차이나는 반응을 보였다.



A는 "뭐?? 미친 거 아니야? 할튼 교무부장 마음에 안 들어." 라며 극대노했고,

B는 "헐.. 그 사람 또 말실수했네." 정도의 반응이었다.


두 사람이 이렇게 다른 반응을 보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 A는 경인교대 출신이고, B는 서울교대 출신이다.

서울교대가 아닌 A는 나의 마음에 공감을 했고, B는 이해는 하되 공감까지는 하지 못했다.



이후 며칠 간 이 일에 대해 생각하며

혹시나 이렇게 기분이 나쁜 것이 나의 피해의식일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정말 기분이 나빴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곱씹어 보았다.



교무부장은 '서울교대 출신이 타 교대 출신보다 잘났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거나 고쳐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본인만의 가치관이 있는 것이고 본인의 잣대로 판단하며 생각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머릿속 생각까지 내가 관여할 수는 다.


하지만 그녀는 잘못을 했.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입 밖으로 꺼내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니까.

특히나 교장, 교감이라는 관리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언행에 주의를 해야 하는 것인데, 그녀는 그러지 못했고 그로 인해 나는 불쾌감을 느꼈다.




이 일 이후로 확실히 느꼈다. 아, 나는 소수자구나.

지방교대를 졸업하여 서울시 교사가 된 소수자구나.



장애인, 동성애자 등 소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그들의 입장을 공감하고 존중하자고 한다.

하지만 과연 진정으로 그럴 수 있을까?

소수자가 되어보기 전까지는, 그 입장이 되어보기 전까지는 절대로 완벽한 공감을 할 수 없다.

이해는 해도, 공감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조차도 내가 소수자임을 느낀 이 사건 이전과 이후, 느끼고 생각하는 바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 날 이후, 내가 하는 말 속에 혹시나 나도 모르게 편견이 깃들어 있지는 않은지 한 번 더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결심을 다.

관리자가 되겠다고.


나같은 소수자가 관리자가 되어서 괜한 말로 필요 없는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줄어들게끔 노력해야겠다고. 그렇게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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