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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래곤 아저씨 Jan 21. 2024

어느 유기인의 반려생활 #2

어느날 온라인 뉴스를 보다가 제주도 유채꽃 밭에 버려진 강아지 기사를 보았다. 더 충격적인 건 두 앞발을 뒤로 묶어놓은 채 유기한 모습의 사진이었다. 분노가 일었다. 그렇게 유기한 사람을 찾아 똑같은 방식으로 어디 황량한 사막에라도 유기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얼마 안지나 부산에서 나무에 묶여 비닐봉지까지 뒤집어 씌어 유기된 강아지 기사를 또 접하게 되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 유기하려면 혼자 살아 남을 수 있는 기회라도 줄 것이지 하며 또 그 인간이 잡혀서 처벌 받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그렇게 그 잔상은 오래도록 나의 머릿속에 잔류하며 한동안 그 분노를 마음속에 저장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처음으로 강아지를 키워 본 내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이런 뉴스에 분노에 차 감정 이입이 되는 걸까? 라며 스스로 반문을 하게되었다. 감정의 동요와 분노의 수위가 생각보다 너무 크게 일렁이는 것 같아 하게 된 생각이다. 내가 강아지를 키운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크게 감정이 일렁이며 분노가 차오르는 것인가? 그러다가 스스로 깨달은 건, 나는 내가 유기견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고, 잘 살아왔다고 하는 것도 거짓말이 아닌 가 싶었다. 내가 나에게 평생 해온 거짓말, 말이다. 이미 그때부터 감정 장애가 생겼던 것 같기도 하다. 화가나면, 화를 내고, 슬프면 울고, 분노가 생기면, 분노를 표출하는 그런 것도 바로 나에게 발생하는 감정들을 순환시키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일텐데, 나는 그것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몰라서, 아주 어릴 때부터 할수 있는 거라고는 꾹꾹 눌러 숨겨 놓는 것 이었다. 그렇게 짓밟고 있으면 그게 영원히 없어지고 사라질 줄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쌓이면  짓눌린 감정들이 뒤엉켜 고인 상태에서 고름이 생겨 터지듯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는 걸 30년 이상을 살았을 때 처음으로 알았다. 


이렇게 나의 반려생활은 나에 대한 고찰과 돌아봄의 시간이 되며 시작했다. 다른 생명체와 함께 산다는 건 이렇게 어떻게든지 상호작용을 하게 되나 보다. 나의 첫 댕댕이 호두가 나의 심연 저 밑에 깔려있던 트라우마를 수면으로 끌어올려 돌아보게 할 줄은 차마 상상도 못했다. 생명체란 그런 것잊 것 같다.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란 예상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고, 어떠한 순간과 마주하게 될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새로움과 생명력 그 안에서 용솟음치는 행복의 순간들이 가득한 것 같다. 그래서 이들을 반려동물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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