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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와테현와규 Feb 21. 2024

어쩌다 보니 건강해졌다.

소소한 마케팅이 불러온 큰 변화

 "포인트 받아서 신발 한 켤레 더 사려고 했던 건데..."


 팔에서는 채혈을 할 수 없어 발에서 약한 혈관을 억지로 끄집어내어 피를 뽑았던 환자가 있다. 한 번에 성공하면 다행이었지만 여러 번 실패를 하며 겨우겨우 채혈을 했던 한 환자는 한 회사의 마케팅 덕분에 좋은 '걷기'라는 좋은 습관도 생겼고, 혈관들이 건강해져 이전보다 수월하게 채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유방암으로 인해 절제수술을 한 환자들은 수술한 방향의 팔로는 채혈이 불가하다. 쉽게 말해 좌측을 절제한 경우는 좌측 팔에서는 채혈을 할 수 없다. 해당 수술을 하는 경우는 주변의 림프절이라는 면역기관도 같이 절제하게 된다. 물론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그래도 채혈을 하는 임상병리사의 입장에서는 일단은 해당 위치의 팔은 피하고 반대쪽 팔을 이용하여 채혈을 한다. 물론 본인이 혹은 담당의가 괜찮다고 한 경우는 수술여부와 관계없이 혈관이 잘 드러나는 위치에서 채혈을 한다. 하지만 이는 극히 드문 경우이고 웬만하면 원칙대로 진행한다.

 그럼 양쪽을 다 절제한 경우는 어떨까? 팔이 아닌 다리를 이용하여 채혈을 한다. 주로 발등이나 복사뼈 주변에 볼록 튀어나온 혈관이 있다. 아무래도 사람이 이족보행을 하다 보니 대부분 발의 혈관은 잘 보이는 편이지만 아무리 혈관이 잘 보이고 튼튼하다 할지언정 발은 아프다. 심지어 팔처럼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힘을 조절하기도 쉽지가 않다. 그리고, 보통은 발을 이용하여 채혈을 한다는 것은 팔 조차도 잘 안 나오기에 차선책으로 선택하는 위치이기 때문에 그렇게 좋은 상태도 아니다.


 하루는 대기 중인 환자를 불렀고, 본인확인 후 발 채혈을 하기 위해 발 채혈을 할 수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양말을 벗은 뒤 발을 올리고 있던 환자 옆에 최근 자주 광고하는 L운동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다른 브랜드운동화와 구분을 해야 하기에 L운동화라 부르겠다.) L운동화는 몇 달 전부터 <여행할 때 좋은 신발>이라며 광고를 했고 나의 핸드폰에 가끔 나타났었다. 해당 운동화를 구매하고 20일간 2만 보를 걸은 뒤 인증을 하면 운동화가격만큼의 포인트를 제공해 주고 그 돈으로 신발을 한 번 더 살 수 있는 이벤트도 진행했었다. 물론 워낙 까다로운 발을 가진 나는(발 볼이 워낙 넓어 아무 브랜드나 신지 못한다.) L운동화가 궁금했지만 선뜻 구매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10만 원이 넘어가는 가격이 나에게는 저렴한 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친한 후배가 해당운동화를 신었고 이벤트를 통해 한 켤레 더 구매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너무 편하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것만으로 구매를 결정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그 후배는 웬만한 신발을 다 편하게 신을 수 있는 발모양을 가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L운동화를 신고 발채혈을 하러 온 그 환자는 내 호기심을 확실하게 풀어줬다. 기본 제품이 있고 새로 나온 디자인이 있는 등 신발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셨다. 이벤트를 통과하여 신발을 한 켤레 더 얻기 위해 억지로 매일 2만 보를 걸었다는 이야기까지 해주셨다.

"2만 보 걷기를 끝내고 원래 신던 N운동화를 신었는데 어찌나 불편하던지. 그때서야 L운동화가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뭐예요."

 N운동화는 현재 내가 신고 있는 매우 편한 신발인데 이것보다 더 편하다고? 이렇게 깔끔하게 비교를 해주시니 구매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안 그래도 올해 여행 계획도 많은데 잘됬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사이에 나는 발등에 볼록 튀어나온 혈관을 통해 채혈을 했다.

"원래는 저 혈관이 잘 안 나오는데 오늘은 금방 뽑아주셨네요."

"많이 걸으셔서 혈관이 좋아졌나 봐요."

"포인트 받아서 신발 한 켤레 더 사려고 했던 건데 그 덕에 제가 건강해졌네요?"

"그 습관 꾸준히 유지하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이전에는 채혈실이 고통이었던 사람에게 지금은 조금 덜 무서운 공간이 되었다. 다음에는 더 튼튼해진 모습으로 오셨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는 누군가의 신발을 유심히 볼 일이 잘 없다. 하물며 나는 직업특성상 타인의 팔을 보지 그 범위를 넘어가는 곳을 보진 않는다. 하지만 어쩌다 봐버린 그 신발의 이야기를 알게 된 나는 구매욕구가 샘솟게 되었고 나 또한 그 신발이 좋으면 주변에 추천을 하겠지? 소소한 마케팅 덕에 나와 어쩌다 한 번 마주치는 환자의 얼굴에 웃음꽃이 필 수 있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많은 기업에서 이런 건강한 이벤트를 종종 진행했으면 좋겠다. 이런 건강한 생각을 가진 브랜드는 널리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나도 이용한 뒤에 후기를 작성해 봐야겠다.

얼마 전 처음으로 등산했던 황령산. 내 체력이 얼마나 엉망인지를 깨달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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