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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애 Mar 28. 2024

느려터진 달팽이는 빠르다

어쩌면 흔한 풍경

어느해. 

섬에서의 2년을 살아보기로 결심하고 난 뒤, 무조건 직진.

집을 구하고 비행기 티켓을 끊고 차는 탁송으로 보냈다. 

아마도 이 결정이 인생에서 제일 빨랐다. 이 낯선 결단력.. 뭐지? 

아무렴 어때. 일단 저지르고 나니 가게 되었잖아. 

우리가 간다. 제주도! 기다려라!     


2년 살이 집에 도착하고 짐을 풀 시간도 없이 집 마당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충분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살아보자.     


학교 가는 날 아침. 

큰아이들은 학교에 먼저 뛰어가고 

막내는 나와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간다.  


달팽이를 마주하는 순간 우린 서로를 보며 첫날부터 지각이구나! 직감했다.

달팽이가 길을 건너갈 때까지 쪼그리고 앉아 응원해야 하는 너.

‘그래 달팽이야 힘내’

‘네가 집에 얼른 가야 우리가 지각을 면한다고!’

막내가 달팽이를 응원하는 사이, 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본다.

돌담 틈으로 삐져나온 담쟁이의 연둣빛이 나를 더 환하게 만들었다.     

그래 우리 제주도에 왔구나. 

돌담과 담쟁이 - 봄날애


제주도는 아침에 유치원 가는 길마저 우리에게 재미와 행복을 준다.     

계절마다 바뀌는 감귤 밭의 표정들, 

마당에 푸드덕 거리며 찾아오는 꿩 한 마리.

반딧불이, 사슴벌레, 장수벌레가 등장하는 날에는 무조건 지각이다.     

지각해도 괜찮아. 


조금 늦어도 괜찮아.


너에겐 느려도 되는 달팽이보다 더 멋진 순간들이 기억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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