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를 위로한 밤

그림책 파란 시간을 아세요?

by 봄날애

파란 시간을 아세요?

불을 켜기엔 아직 환하고 책을 읽거나 바느질을 하기엔 조금 어두운 시간.

그림자는 빛나고, 땅은 어둡고, 하늘은 아직 밝은 시간.

온 세상이 파랗게 물드는 시간. 세상 모든 것들이 조용히 밤을 기다리고 있는 시간.

슬프고 아름다운 시간이라고 그림책작가는 말한다.


‘그래 파란 시간. 참 좋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아름다운 찰나의 순간이 나에게 하루동안 수고했다며 깊고 즐거운 밤을 선물해 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나의 어린 시간이 떠올랐다. 그때는 파란 시간이 오는 게 싫었겠구나.

어른이 되어서도 내가 자주 꾸던 꿈이 그날의 나를 떠올렸다.


엄마는 일하느라 정말 바빴다.

낮에도 밤에도 일을 해야 했기에 저녁밥을 먹고 나면 엄마는 다시 일하러 나갔다.

혼자 남겨진 나는 밥상을 치우고, 연탄불을 갈며 혼자 잘 준비를 해야 했다.

파란 바다가 보이던 언덕 위의 작은 집.

꿈속에서는 어둡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집.

잠글 수 있는 문은 다 잠가도 누군가 들어올 것 같고, 이불을 뒤집어써도 바람 부는 소리는 생생히 들렸고, 낙엽 바스러지는 소리만 들려도 두 귀가 쫑긋. 쉽게 잠들지 못했던 밤의 꿈.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이 꿈을 꾸는 것이 싫었다.


그러다 옆에서 자고 있는 막내를 보며 알게 되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이렇게 작은데, 이 작은 아이가 혼자 밤을 보냈어야 했던 그때, 그 어린 날. 그날 밤. 파란 시간이 되는 순간부터 무서움에 얼마나 떨었을까?.

막내를 보며 그날의 내가 보였다. ‘이렇게 작은 아이였어.’

그리고 그날의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그래, 나 참 많이 무서웠구나. 엄마가 많이 안아 주지 않아서 긴긴밤, 힘들었구나.’

한 손은 막내 손을 꼭 잡고, 한 손은 나를 쓰다듬듯 막내머리를 쓰다듬으며 내 품에 쏙 넣었다. 그리고 이마에 입술을 대고 잠을 청했다.

수많은 밤 파란 시간에 힘들었을 나를 위로하며 잠들었던 시간.

그러기를 반복하고 나니 더 이상 그 꿈은 꾸지 않게 되었다.


<파란 시간을 아세요?> 그림책을 통해 내가 위로받았다.

지금은 아름다움에 눈을 떼지 못하는 파란 시간의 순간이 더 많아졌다.

두 아이가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그림책 속 파란 시간이 낡은 가로등 기둥에 숨어 있었던 것처럼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많은 요즘이다.

그렇다고 내가 숨을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숨을 곳은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나만의 비밀장소가 있다. 낡은 가로등 뒤가 아닌 한잔 술잔 뒤.

그 뒤로 오늘도 조용히 숨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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