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새로움은 항상 신선하고, 매력적인 것이었다. 새로운 도전이 때로는 두려웠지만, 그래도 새로운 걸 배우는 것이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신체적인 나이 때문인지 호르몬의 변화인지 몸도 마음도 열의가 생기지 않는 것 같다. 지금은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가 남을 거라는 것을 알게 된 나이가 돼서인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의 결말이 공감은 간다. 하지만 그렇게 매력적인 시몽 같은 연하남이 사랑을 고백한다면 나라면 어땠을까? 흔들리지 않았을까?
‘엄마, 아빠 어떻게 만나게 되었어요? 누가 더 많이 좋아했어요?’ 딸의 질문에 남편은 ‘얼굴을 봐라 누가 좋아했겠니?’하며, 아이들을 헷갈리게 한다. 연애 초기 남편에 대한 확신이 없어 흔들렸었지만, 그 시절 확고했던 남편 덕분에 결혼까지 하게 된 나는 결혼하고 나서 반대의 상황이 전개되는 것 같았다. 무슨 인연으로 만나 이렇게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도 남편이 없으면 찾게 되고 무엇이든 같이 하고 싶고, 의지하게 되는 내가 가끔 자존심이 상했었다. “그녀는 한 손을 그의 손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녀는 완벽한 안정감과 더불어 자신이 그에게 완전히 익숙해져 있음을 느꼈다. 로제 이외의 누군가를 사귀는 일 같은 건 결코 할 수 없으리라. 그녀는 그런 안정감에서 서글픈 행복을 끌어냈다.”는 폴의 대사를 보며 슬프지만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중년이 되는 40대가 지나면 인생에 큰 지진이 온다고 정신분석의 칼 융은 말했다. 우리가 말하는 ‘중년의 위기’ 그만큼 변화가 커서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삶이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다. 폴의 나이 39살에 25살의 젊은 미남 시몽은 사랑 하나로만 만나기에는 생각할 게 너무 많았던 것 같다. 반면 40대 비슷한 나이의 로제는 바람둥이이지만 익숙하고 편안함이라는 친숙함 때문에 관계를 정리하기가 쉽지만 않았을 것 같다. 사강이 그렇게 고심했던 제목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 덕분에 폴은 자신이 잊고 있던 피하고 있던 질문에 답을 찾게 된다.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를 직면하고 올바로 보아야 문제가 해결된다. 그래서 우리가 잊고 있던 나를 돌아보고, 모든 선택에 내가 주체적일 때 오래된 사랑이든 새로운 사랑이든 선택이 가능할 것 같다.
나에게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어떤 타이밍 같기도 하고, 시간에 따른 대상이 중요한지, 나의 상태가 중요한지 모르겠다. 사람은 어떤 것에 속하게 되면 그것에서 벗어나려 하고, 너무 자유로워지면 구속받기를 원하는 양면성이 있는 것 같다. 때로는 삶에 지치고, 외로울 때가 있겠지만 지금의 남편이 묵묵히 나를 받쳐 주지 않았다면 더 당당한 내가 될 수 없었듯 내가 아는 사랑은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녀는 한 번 더 그를 품에 안고 그의 슬픔을 받쳐 주었다. 이제까지 그의 행복을 받쳐 주었던 것처럼. 그녀는 자신은 결코 느낄 수 없을 듯한 아름다운 고통, 아름다운 슬픔, 그토록 격렬한 슬픔 속에 있는 그가 부러웠다.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라는 노래 가사처럼 사랑한다고 꼭 행복만 떠올릴 수 없듯이 인생의 다양한 면을 받쳐 줄 수 있는 사랑이라면 새로운 사랑이 와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내가 그때 이 사람을 선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끔 새로운 사랑을 꿈꾸기는 하지만, 나를 위해 묵묵히 과일청 등을 담그는 사람 덕분에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사랑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