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이 모르길 바란다
나의 아이는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와 연관이 없는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언제부턴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빼고 말하기엔 내 삶의 대부분을 아이에게 맞춰 살아왔다. 여전히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중대한 결정의 순간, 고민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사소한 여유가 사치임을 느끼게 되는 좌절의 상황.
평범한 행복을 무한한 감사로 만들어주는 일상에서 기적이 되는 기쁨.
이 모든 게 아이로부터 시작되니 그러할만하다.
그런데, 나는 그리 느끼면서 살면서도,
나를 나로 인정받고 읽히길 바랐다.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걸 밝히는 순간, 나를 달리 보고 있다는 것에 불편해졌다.
가련한 삶을 짊어진 기구한 팔자로도,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 억척스러움으로도 비춰지고 싶지 않았다.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나로서 질책받고 인정받고 평가받고 싶었다.
숨기는 것도 뭔가 석연치 않아 내 얘기를 하고 나면,
담아두다가 언젠가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게 많이 아프기도 했다.
"네가 아이 때문에 예민해져서 그렇게 받아들이는 거 아냐?"
- 그러게 말이다.
아이 때문에 예민해졌다고 치자. 그래, 도저히 맨 정신으로 버틸 재간이 없으니.
예민해졌다고 진단을 내려놓고, 예민한 사람에게 비수를 꽂는다.
알 만한 사람 아니 알고 있는 사람이 더 하다고 해야 하나?
"왜 그런 거야? 엄마가 예민해서 애가 그런 거 아냐?"
- 진짜 처음에 수없이 질문했다. 왜, 왜, 왜, 무엇 때문일까.
임신 중 업무가 많아서였을까? 임신 중 접촉사고 때문이었을까?
전자파 차단 앞치마만 믿고 컴퓨터 앞에 너무 오래 앉아 있었나?
별별 생각이 꼬리를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 답을 못 찾아서 막막했는데, 그 답이 내게 있다는 명쾌한 답을 내리니 그게 현주소다 싶은 생각에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맥이 빠졌다.
그 사람 말을 수없이 곱씹고 내린 결론은 <나는 그런 아이(?)를 둔 게 마땅한 엄마>라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닫으며,
먼저 말하기보단 조금 지내면서 얘기하고 있다.
조금씩 마주치면서 살아가는 얘기를 하다 보면, 같은 방향의 얘기를 할 수 없으니 말을 안 할 수가 상황이 온다.
아이가 열네 살이라니, 또래 아이를 둔 상대는 반갑다며 여러 화제를 꺼낸다.
중학 생활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어 하고,
다니는 중학교, 사교육 현황, 학업 수준, 사춘기 아이에 대한 고민 등등
비슷한 아이를 둔 부모로서 던진 한 두 가지의 질문에
금방 K.O. 패를 당하고 이실직고한다.
"저희 아이는 장애가 있어요. 자폐성 장애예요."
그럼 갑. 분. 싸.
그 사람은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하고, 어찌 말을 해야 할지 당황해한다.
나는 갑. 분. 씩.
나는 갑자기 씩씩해지고 유쾌한 척한다.
그래야 이 대화가 가볍게 끝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나는 만화 속 캔디처럼, 최대한 유쾌하게 힘들었지만 괜찮은 삶임을 가볍게 말하며 웃어넘긴다.
당신이 모르길 바랐지만,
당신이 안 이상,
당신에게 불편한 마음을 주고 싶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