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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Apr 30. 2024

아빠가 울고 있다.

과거로부터의 기억

전화기 너머의 아빠는 울고 있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에게 잘해 주지 못했어." 

아빠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했다.


작년부터였다. 아빠가 달라진 것을 느낀 것은. 기운 없음을 자주 얘기 하셨고 하루에 걸려오는 전화는 점점 늘어만 갔다. 전화 속 대화는 별 것이 없이 그냥 같은 얘기의 반복이었다. 노령화로 인한 증상으로 생각하고 기력을 회복할 수 있는 것만 찾고 있었다.

한참을 지나고야 병명을 알 수 있었다. 신경과와 혈액과 동시에 두 곳에서 병을 진단받았다. 너무 시간이 지난 뒤에 알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빨랐다면 달라질 수 있었을까?


아빠는 요즘 과거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일상을 사신다. 현재의 기억은 1시간 뒤면 삭제되지만 과거의 기억은 또렷하다.


아빠의 기억은 당신이 젊었던 시절로 가있었다. 그 당시 너무 바빴고 삶을 살아 내느라 자녀들을 살뜰히 살피지 못했다. 그 당시는 다들 그랬다. 친구네라고 별반 다르지 않게 그렇게 살던 시절이었다. 아빠는 용돈 한번 본인손으로 직접 챙겨주지 못함을 내내 미안해하셨다. (물론 우리는 엄마에게 받고 있었다.)

내가 그때를 기억해 보자면 아빠는 내내 바빴고 그게 당연한 일이었고 그냥 그렇게 평범하게 살았다.

그럼에도 아빠의 기억 속에는 못해 준 것만 생각나는 마음쓰임만 남았나 보다. 

첫 손녀에 대한 애정이 참으로 컸으므로 이 또한 진하게 남아있어서 지금은 성인이 된 손녀에 대한 사랑은 아빠 머릿속에 커다란 도장처럼 새겨져 있다.


이제 아빠의 시간은 더욱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년기 일찌감치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떨어져 서울에 홀로 독립하던 시절로 가 계신다. 성인이 되기 전에 부모와 떨어진 서울 생활이 얼마나 고달팠을까. 부모가 되어보니 지금의 나의 아이들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눈칫밥으로 살았을 생각을 하니 내가 아빠의 엄마가 된 것처럼 눈물이 난다. 

그런데 아빠는 당신의 힘듬보다 당신의 어머니에게 못해준 것만 생각나시나 보다.

"엄마(친할머니)에게 잘해주지 못해서 눈물이 난다." 가끔 전화기 너머로 말씀하신다.

나는 더 이상 슬퍼지지 않도록 "엄마 생각하면 누구나 눈물이 나는 거야" 하고 바로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 버린다.

나는 아빠의 어린 시절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아 눈물이 난다.


아빠의 기억이 좋았던 때에 머물러 있으면 좋겠다. 좋았던 기억이, 행복했던 기억이 아빠의 인생에 얼마나 있었을까? 아빠의 사진폴더에는 우리 형제의 어린 시절과 첫 손녀에 대한 기록과 아빠의 엄마(친할머니), 아빠의 할아버지, 할머니 기록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흑백으로 가득한 사진과 영상들을 아빠는 매일 보고 또 보신다.


아빠가 매일 되새김질하는 과거의 기억이 부디 즐겁고 행복한 느낌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 과거의 힘들고 마음 아프고 괴로웠던 일들을 계속 계속 떠올리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나의 현재는 미래의 과거가 될 것이다.

나는 나의 현재를 따뜻하고 행복한 느낌으로 채우고 싶다. 미래에 과거를 추억하면 자세히 기억나지 않더라도 그 순간의 느낌이 행복했음을 느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로 인해 누군가 상처받지 않기를. 내가 따뜻한 사람이어서 옆에 있는 사람을 따뜻하게 해 줄 수 있기를. 그리고 그런 것들은 내 주변 가족에게 먼저 전달되기를.

나를 다듬고 좋은 사람, 따뜻한 사람이 되도록 살아가야겠다.


아빠가 1시간 뒤에 현재의 기억이 지워지더라도 그때의 따뜻하고 행복했었다는 느낌은 간직할 수 있도록 나는 아빠를 더더더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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