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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란 Jul 15. 2023

비우고 버리는 일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하여

최근에 몇몇 사람들에게 잇따라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말실수 또는 글실수를 했다. 복직을 하고 새로 발령받은 일터에서, 새로 받은 업무에 적응을 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이 벅찼는데, 그러다보니 일 바깥 영역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잇따라 실수를 하는 경우가 생기고 말았다. 사실 내 욕심이 과한 탓이었다. 굳이 하지 않았어도 되는 말이나 글을 굳이 내보였던 것이다. 마치 아기가 제가 좋아하는 대상을 향해 손아귀 힘을 어떻게 조절할 줄 모르듯이, 그렇게 내 힘 조절을 못했던 것이다. 사실 나의 대부분의 대인관계상의 실수는 그런 것이다. 힘 조절을 잘 못한다. 한 마디로 세련되지 못한 사람이다.


앞서 다른 글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그렇게 원만한 사람이 아니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무리지어 무언가 하는 것에 익숙지 않다. 최근 들어 달리기에 마음을 붙이면서 러닝크루에 연달아 가입을 하긴 했지만, 거기서도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크루원 1이다. 달리기를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빼어난 외모나 원만한 성격을 가진 것도 아니고, 소위 '센스 있는' 타입도 아니다. 그냥 혼자 달리기를 하다가 같이 달리기를 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을 뿐이다. 독서모임에서도 마찬가지. 책을 혼자 읽다보니 같이 읽고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 가입한 것일 뿐이고, 사람들을 만나서도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더 좋아한다. 역시 세련되지 못한 사람이다. 


하나 잘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것이다. 순응을 잘한다. (그래서인지 어째 직업도 저같은 것을 고르게 되었는데, 또 거기선 그렇게 적응을 잘 하는 것 같진 않아서 희한하다) 이번의 실수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어쩌랴. 이미 저지른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밖에. 무언가 말을 덧붙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건 내게는 중요할 수 있어도 상대에게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릴 때는 그걸 몰라서, 사과를 하면서도 구구절절 변명을 붙이곤 했다. 이제는 하지 않는다. 그래요, 생각해보니 제 잘못입니다. 미안해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상대가 나의 사과를 받아준다면, 다행이다. 받아주지 않는다면, 할 수 없다. 그와 나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보다.


순응을 잘해서, 인연의 오고 감에도 크게 감흥이 없다. 헤어지면 헤어지는 것이고, 다시 만나면 만나는 것이려니. 조금 더 어린 시절에는 오만 가지에 섭섭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마음을 졸이고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왠지 피로하게 느껴진다. 일상에(특히 직장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는 탓이다.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곳에서 그렇게 에너지를 쓰고, 또 일 밖의 사람들에게 나눌 에너지가 없다. 나는 애초에 근력이라는 게 없는 사람이다. 체력을 쌓으려고 그렇게 달리기를 해 보았는데 그리 체력이 생긴 것 같지 않다. 마음도 그렇다. 마음에도 근력이라는 게 있다면, 나는 그게 확실히 부족한 사람이다. 어떻게 쌓는 건진 모르겠지만, 잘 쌓아지지 않는 것 같다. 이제는 그런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실수로 마음이 다쳤을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빠르게 사과를 하고, 그간의 나를 곰곰이 돌아보았다. 나의 세련되지 못함, 나의 서투름, 나의 진정한 마음을. 어느덧 장마가 시작된 7월의 중순, 빠르게 달아오른 땅이 폭우로 빠르게 식는다. 마음도 그렇다. 빠르게 달아오른 마음은 빠르게 식어버리고 만다. 갓난아기처럼 힘 조절을 못하던 손아귀를, 내 힘에 내가 못 이겨 손톱자국을 내고만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일상을 너무 돌아보지 않았던 것 같다. 어느새 관계 쌓기에 과한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에너지도 없고 세련되지도 않은 사람이, 비우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것들을 잔뜩 안고 힘겨워했다. 그래선 안될 일이다.


얼마 전까지는 몸을 상해가면서까지 무리하게 달리기 약속을 잡아 나가곤 했다. 달리기 연습을 하고 싶기도 했지만, 같이 달리는 사람들이 좋아서였다.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내 몸이 상할 정도로 무언가에 몰두하는 게 좋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번주는 주 중반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직장에서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그래서 금요일부터 주말까지 꽉 차 있던 달리기 약속이며 독서모임은 모두 취소했다. 대신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커피를 내려 마시고 어둑어둑한 방 안에서 책을 읽었다. 이런 주말도 참 좋다.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이 나의 마음의 잔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준다. 흐리고 비 오는 날 내려 마시는 커피는 향과 맛이 더욱 진하다. 혼자 읽는 책은 그 메시지가 더 강하고 올곧게 다가온다.


몸이 조금 더 나아지면 저녁에는 정말 오랜만에 혼자 나가서 뛰어봐야겠다. 음악과 나만 있는 달리기도 퍽 재미있다. 원래도 혼자서 달리는 것을 잘했다. 왁자지껄 웃으며 낯선 길을 신나게 달리는 것도 즐겁고 유쾌하지만, 이어폰을 꽂고 혼자 숨소리를 고르며 익숙한 길을 천천히 달리는 것은 언제나 상쾌하고 좋다. 컴퓨터의 휴지통도, 스마트폰의 갤러리 폴더도, 하다못해 집안의 쓰레기통도, 때가 되면 비워줘야 한다는 걸 안다. 마음에 쌓인 먼지도 이따금 털어주어야 한다. 좋은 사람들이 남겨준 행복하고 따뜻한 시간들은 잘 간직하고, 나의 실수로 얼룩졌던 무안하고 창피한 순간들은 털어내야 한다. 그래서 당분간은 혼자 있는 시간을 늘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에 쌓인 것들을 비우고 버리면서 나를 잘 다스려봐야겠다. 커피와 책이, 나의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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