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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란 Dec 17. 2023

흐르는 강물처럼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기 전에

장 자끄 상뻬의 소설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한 마디로 얼굴이 잘 빨개지는 아이가 얼굴이 잘 빨개지는 어른이 되는 이야기다. 태어날 때부터 얼굴이 잘 빨개지던 아이가 친구를 만나고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친구와 변함없는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 친구와 우정을 나누는 아이의 모습도 좋았지만, 실은 그 이야기의 끝이 '이런저런 노력 끝에 결국 그 아이는 얼굴이 잘 빨개지지 않게 되었습니다.'로 맺어지지 않는 게 더 좋았다. 타고난 것은, 타고난 대로. 주어진 것은, 주어진 대로.


나는 어려서부터 긴장과 불안, 우울이 상당한 아이였다. 우울한 기질이 때로 욱하는 성질로 나타나는 아버지와 그런 남편을 곁에 두어 심장이 약해졌다는 엄마 사이에서 자란, 평범하고 지루한 여자아이였다. 그래서 평생을 대체로 평범하고 지루하게 살았다.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배운 대로 견디고. 세상에는 내 맘대로 되는 일보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이 훨씬 많으며, 아니, 실은 그런 일이 대다수이며,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사춘기 이후 끊임없이 깨달았다. 특히, 타인의 마음이 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보통 그런 아이는 내적으로 침잠하게 마련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잡생각하기 좋아하는, 속에 무슨 꿍꿍이를 담고 있는지 잘 내색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타인 앞에 함부로 제 꿍꿍이를 내색했다가, 자칫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낯선 것, 모르는 것, 해보지 않은 것,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늘어난다. 책을 좋아하는 것은, 그것이 안전하게 무한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내게 낯설고 모르는 것,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알려주지만 절대 나를 해치지는 않는 안전하고 무한한 물질, 그것이 책이었다.


내적으로 침잠하는 아이는 내적으로 침잠하는 어른이 된다. 얼굴이 잘 빨개지는 아이가 얼굴이 잘 빨개지는 어른이 되듯이. 타인 앞에 말과 행동을, 주장과 의견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된다. 무골호인, 호구, 마냥 좋고 착한 사람, 잘 참는 사람, 때로는 자기 주장이 없어 답답한 사람, 가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이를 더 먹고 직장에 입사하고 돈을 벌고,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산다. 누가 주지 않은 상처를 혼자 받기도 한다. 세련되지 못한 언행을 하고 오해를 산다. 가끔 전문가의(특히 의학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나의 평범한 친족들은 이따금, 나의 정신적 나약함에 개선과 노력을 요구한다. 그렇게 나약해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어. 착해빠진 사람은 견디기 어려운 게 세상이야.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래. 이제는 딱히 대꾸할 말도 없다.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기도 하므로. 얼굴이 잘 빨개지는 아이가 결국 얼굴이 잘 빨개지는 어른이 되듯이, 허약한 아이가 허약한 어른이 되었다. 사춘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너무나도 오랫동안 배우지 않았나. 노력으로 되는 일이 세상에 많지 않음을. 허약한 아이가 강한 어른이 되는 일도, 어쩌면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일 수 있음을.


서른 넘어서까지 나는 몸 움직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타고나길 몸치였다. 중학교 때 체육교과를 담당하던 한 담임선생님은 내게, '너는 노력해도 B 이상은 받을 수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빠르게 수긍했다. 퇴근 후 혼자 동네의 자전거길을 달리기 시작한 것은, 이대로 계속 살다간 평범한 일상생활조차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언제까지 살진 모르지만 사는 날까지 몸뚱아리가 일상을 영위할 수는 있게 하자. 그런 생각으로 달렸다. 당연히 빠르게도 오래도 달릴 수 없었다. 지금도 대체로 그렇다. 그냥 되는 대로 달린다.


그렇게 4년 넘게 달렸다. 나는 싫증을 잘 내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이 활동은 싫증이 잘 안 난다. 싫증이 나려다가도 금세 다시 슬그머니 좋아진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마 내 생각보다도 훨씬 정신적인 측면이 큰 활동이라 그런 것 같다. 달리기는 의외로 마음을 다스리기 좋은 활동이다. 단순하고, 일정한 시간을 들여야 하고, 집중해야 한다. 게다가 적당한 속도감이, 몸의 모든 감각으로 하여금 외부세계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앞을 보고 목표지점을 향해 달리는 동안은, 나를 둘러싸고 있던 안개 같은 불안이 걷힌다.


최근에 지인을 만나 점심을 먹었다. 한참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건강을 걱정하다 지인이 내게 문득, 불안은 어때요, 라고 물었다. 나는 조금 생각하다가, 달리기를 하거나 책을 읽어요, 라고 답했다. 달리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의학과 기타등등의 도움, 나의 노력, 어떤 상황들의 개선, 운좋게 만난 좋은 지인들과의 마음나눔이 나의 불안 일부를 해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가 결국 얼굴 빨개지는 어른이 되었듯, 불안한 아이가 불안한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단지 어떤 식으로든 성장했고, 세련을 공부하였으므로, 일정 시간 동안은 그렇지 않은 척 할 수도 있다. 단지 그뿐이다.


달리기를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는데, 그 중 하나는 자연스러움이었다. 내 몸을, 상태를, 거스르지 말자고 생각했다. 빗물이 땅에 스미듯 천천히 자연스럽게 속도에, 높아지는 체온과 빨라지는 호흡에 스며들자고. 성급하게 속도를 올리면 쉽게 지쳐서 원하는 만큼의 거리에 도달하지 못한다. 팔을 자연스럽게 흔들자. 몸에서 힘을 줄 곳에는 주고 뺄 곳에는 빼자.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르듯이 달리자. 언젠가부터 나의 달리기 목표는, 물처럼 달리는 것이 되었다. 누구보다 빨리 또는 멀리 가는 것은, 나는 못한다. 단지 물처럼 달리는 것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다보면 언젠가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고 싶다.       


패인 길가에 고였던 물이 꽁꽁 얼 만큼 추운 휴일 아침, 인적이 드문 공원을 달렸다. 같이 달리는 사람들의 속도에 맞추다보니 숨이 턱까지 찼다. 손끝과 발끝이 얼어 떨어질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달리다보니 몸이 서서히 데워졌다. 입김이 날렸다. 이따금 바람이 온몸을 때렸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게 좋았다. 내 몸과 마음 바깥에 있는 모든 것이 나로부터 어느 만큼 멀어져 있는 것이. 나의 온몸이 달리기에 쓰이고 나의 모든 감각이 활짝 열려있다는 것이. 평소에 나를 감싸고 있던 모든 불안과 긴장과 우울이 단 한점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 내 몸과 마음이 이렇게 오롯하다는 것이.  


타고난 것은 타고난 대로, 주어진 것은 주어진 대로 자연스럽게, 물처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한다. 불안하고 우울한 아이가 시간이 흘러 결국 불안하고 우울한 어른이 되었지만, 그 어른은 이따금 책을 읽고 달리기를 할 수 있다. 이따금 물처럼 달리는 꿈을 꾸기도 한다. 매일 행복하게 살지는 못하지만 불행을 견딜 수 있는 힘을 매일, 매순간, 배운다. 언젠가의 글에서 나는, 사는 일이 온통 배우는 일이라고 쓴 적이 있다. 정말 그렇다. 달리며, 책을 읽으며, 살며, 배운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려 할 때,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가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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