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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시선을 넘어서, 자기 삶을 선택하는 힘

우리가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들

by 해피엔딩

최근 아내와 교육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음속에 남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학교 교육의 시작이 훌륭한 노동자를 생산하기 위한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하고 있는 교육 활동이 어쩌면 자본주의의 일원으로 아이를 길러내는 일 같아서... 좀 씁쓸해.”


아내의 말엔 분명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단지 '정보를 들었다'가 아니라, 그 진실 앞에서 마음이 흔들린 것이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자본주의는 과연 본질적으로 부정적인 걸까? 물론 불편한 진실도 많다. 하지만 자본주의 자체는 '좋다, 나쁘다'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건 단지 세상의 한 구조, 하나의 시스템일 뿐이다.

물론 학교 교육을 받지 않고도 성공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보다, 묵묵히 학교 교육을 밟고 성장한, 이름 없는 수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나는 믿는다. 그들은 뉴스에 나오진 않지만, 각자의 삶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러니 아이에게 중요한 건 '이 시스템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교육의 본질이라 믿는다.

내가 아내에게 말했던 것처럼, 어떤 선택을 했을 때 다른 선택은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동시에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 그걸 받아들이는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선택에 기꺼이 만족할 줄 아는 마음도.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면, 그 아이가 나중에 노동자로 살든 자본가로 살든, 그것은 결국 그 아이의 몫이자, 자유가 될 것이다.


어느 날, 아내 반에 있는 아이 이야기가 나왔다.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그 말의 결과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는 듯한 모습. 선생님에게 막말을 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 아직 어려서 그렇겠지만, 아내는 그 모습이 조금 무책임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아이도 결국엔 철이 들 거라고 믿는다. 타인의 반응, 세상의 반응, 나를 향한 시선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 순간 거울처럼 자신을 비추기 시작할 테니까.

그렇다. 남의 시선. 왜 우리는 그것에 이토록 민감할까?

자본주의 사회에선 그 시선을 부추긴다. 광고는 말한다. "이게 더 좋은 거예요." 방송은 보여준다. "이렇게 살아야 성공이죠." 그 흐름은 너무도 거대해서, 우리를 자연스레 하나의 프레임 안에 가두어 버린다.

신축 아파트, 수입차, 고급 브랜드. 성공은 늘 외부의 기준을 따라 정의된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덜 가진 것에 마음이 쓰이고, 더 가지려는 욕망이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지금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있는가?”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자본주의 안에 살고 있든, 그 바깥에 있든, 자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 선택을 누구의 기준으로 하느냐는 삶의 방향 전체를 바꿀 수 있는 문제다.

아이가 자라며 세상의 시선을 마주할 것이다. 그 시선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중심을 잃지 않는 아이로 자라길 바란다. 그게 우리가 교육을 통해 전하고 싶은, 결국은 ‘삶을 살아가는 힘’ 아닐까?


아이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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