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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결심, 다정한 변화

교실에도 모드가 필요하다

by 해피엔딩

"오늘부터 인사는 안 하기로 했어."


하루 일과를 마친 저녁,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습관처럼 반복되던 교실 인사를 멈추겠다는 말이 낯설게 들렸다.
그 짧은 문장 너머로 나는 무언가 깊은 고민이 있었다는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아내는 초등학교 교사다.
그날도 아이들과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얼굴에는, 단순한 피곤함이 아닌 어딘가 결심한 듯한 표정이 묻어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이제 인사하지 않기로 했어.
아이들이 그걸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고. 차려, 인사! 그거 말이야.
그래서 우리 반은 이제 하이파이브만 하기로 했어.”

그 말에는 결단과 동시에 약간의 불안도 느껴졌다.
아이들이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순간적으로 ‘내가 거부당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한동안은 자동사고처럼 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고 했다.


“근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더라고.”

수업은 그대로 이어졌고, 아이들은 여전히 질문을 하고 웃으며 이야기를 건넸다.
‘그저 인사를 안 했을 뿐인데, 괜찮구나.’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아내는 긴 시간을 마음속에서 씨름했을 것이다.


아내는 말한다.
“그동안 내가 하고 싶은 걸 아이들에게 시켰던 건 아닐까?
이제는 아이들이 불편해하는 걸 놓아보려 해.
그리고 그런 결정을 했다고 해서 수업을 대충 하겠다는 것도 아니야.
원칙은 지키되, 형식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 아이들은 소리에 민감하고, 신체 접촉에 예민하다.
하이파이브 하나에도 어떤 아이는 어색함을 느끼고, 어떤 부모는 걱정을 표한다.
그 속에서 교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조정해야 한다.
아내는 그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을 원망하지 않고, 그저 ‘이 시기의 아이들이 그렇다’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참 대견했다.


“혹시 나중에라도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그때는 내 마음을 이해해 줄지도 몰라.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이해해주기로 했어. 아이들 대신 내가 먼저.”

그 말을 듣는데, 참 고맙고 뿌듯했다.
아내가 정말 아이들의 입장에서 교실을 바라보려 노력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방식’을 아이들에게 따르게 하던 사람이, 이제는 ‘아이들이 불편해하지 않을 방식’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학년마다, 시기마다, 상황마다 교실은 다른 색깔을 띤다.
그걸 인정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교사가 된다는 단단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내는 그런 교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내가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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