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불편했던 그 모습이 내 안에도 있었다
요즘 배우자는 정신분석 소설을 읽으며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그러다 다시 보게 된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해석을 발견했다고 한다.
저주를 받아 할머니가 된 여주인공.
그 모습이 오히려 자신이 외면하고 싶었던 내면의 어떤 진실처럼 보였다고 했다.
영화 속 캐릭터가 거울이 되어
자기 안의 ‘어둡지만 중요한 부분’을 비춰준 경험.
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공감이 갔다.
왜냐하면 나 역시 오늘,
비슷한 깨달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늘
‘왜 저 사람은 인사를 안 받아줄까’
‘왜 저렇게 무심할까’
하고 속으로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 나는
급한 마음에 복도를 뛰어가며
누군가의 인사를 놓쳐버린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타인이 나에게 무심한 것이 아니라,
늘 자신만의 사정 속에 살아가는 것뿐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을 때,
나는 이미 다른 일로 정신이 팔려 있었고
그에게 완전히 집중할 여유가 없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누군가는 나의 답을 필요로 했지만
나는 모두에게 충분하지 못했다.
이 모든 순간이 겹쳐지며 하나의 진실을 배웠다.
내가 타인에게서 불편하게 느끼던 모습이
사실은 내 안에도 존재한다는 것.
배우자가 말한 ‘내면의 그림자를 인정하는 과정’이란
결국 이런 순간들로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우리 둘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고,
서로 다른 장면 속에서 깨달음을 얻었지만
오늘은 이상하게도 같은 지점에서 만났다.
“내가 싫어하던 타인의 모습이
사실은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깨달음을 나누는 관계라면,
앞으로 우리가 겪을 모든 장면도
조금은 더 따뜻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