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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간 Oct 17. 2023

시를 그리는 소년 3

나무인간 63

* 2023 서울시립 난지창작스튜디오 도록에 실릴 텍스트의 본문 중 일부입니다.

시를 그리는 소년

시를 그리는 소년


외계(外界)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畫家)였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보내곤 하였다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김경주/ 외계(外界)/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문학과 지성/ 2012    




 나는 실금, 부재, 농담, 공허, 그림자, 거울, 무명 따위의 관념들로 한성우의 시를 정의할 수 없다. 그것은 나의 사모곡을 무척이나 공허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단지 그는 그의 시처럼 세상에 존재한 무엇일 뿐이고, 그 손끝에서 철저하게 그리워진 불분명한 시간성일 따름이다. 헤테로토피아적 사랑. 그것은 캔버스에 갇힌 그래서 캔버스 밖으로, 밖으로만 끊임없이 뛰어내리는 슬픔이다. 그것은 세상에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논리. 우리의 시야로 읽을 수 없는 기형적 빛이 투사된 여과체이다. 형언할 수 없는 쾌와 불쾌 그리고 심장에 가득 차오르는 뜨뜻미지근한 온도이고, 오롯이 제 홀로 추락과 동시에 상승하는 기류이다. 그것을 단 하나의 어휘 ‘사랑’이라 규정하지 않으면 무엇이라 해야 옳을까.

 어쩌면 재 같은 것이다. 그의 그림에 대한 흔적을 남기는 것이 앞뒤가 안 맞는 모양새지만 그의 시는 그라는 사랑이 남긴 유일한 한 줌의 재라고 생각한다. 태운 후 침전도 퇴적도 하지 못한 채 형태감마저 헤아릴 수 없는 태로 부유하는, 차마 물질이라 부르기조차 민망해서 감히 이름은 꿈도 꾸지 못하는 부조리한 존재, 나는 여태 형언할 수 없는 것은 단 한 번도 아름답다고 여긴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나는 자꾸 설명하려 든다. 이 처량하고 난처한 강박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사고(事故)를 통해 무엇도 발설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사랑이란 부조리를 입에 담을 수 있을까.     

 고백하건대 이 텍스트는 온통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는 허황된 이별의 이유처럼 끝날 것이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접으며 겪는 언짢음처럼, 애초부터 이 글은 철학적 논고나 비평적 태도를 갖추느니 차라리 누군가의 마음 위를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냥 지나가는 것이다. 여정, 출발과 도착이라는 여행적 기술법이 아니기 때문에- 흘러가는 대로, 돌이켜보아 길이 보이지 않아도 그만이다. 그렇기에 이글은 그의 끈질긴 질료적 투쟁에 견주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부끄럽고 난감하다. 내가 만일 그의 질료라면, 내가 만일 그의 기의고 기표라면, 그래서 만일 한때 사랑한 것을 호명한 뒤 호출해야 하는데 부를 수 없는 지경에 처한다면, 내 사랑의 목소리가 어떤 음정이고 어떤 모습으로 걸어오는지. 그 모든 것을 왜 저토록 견고한 물질(matière) 속에 숨겨야 했는지 그처럼 고백할 수 없다면, 그렇게 지독히 쓸쓸한 순간이 다가온다면, 그때 나는 내 사랑을 단 한 번이라도 소리 내 읽었다고(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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