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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간 Dec 19. 2023

기합

나무인간 70



아침 10시에서 11시 사이 집 뒤 근린공원을 오르는 노인이 있다. 그는 작년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기합소리는 그가 공원을 찾은 첫날부터 들렸다. 비루했다. 걸음과 기합은 불규칙하고 서툴렀다. 창 너머 본 그의 움직임은 마치 태어나 처음 계단을 오르는 듯했다. 아마도 뇌질환이나 혈류장애 또는 중풍 후유증일 것이다. 노인은 강했다. 악천후에도 아랑곳없이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매일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그를 경청했다. 나는 말없이 그를 응원했다. '그래요, 살아요.'


1년이 지났다. 어김없이 그는 오전 10시에서 11 사이 근린공원에 온다. 그의 기합은 계단을 오르는 그의 걸음보다 앞선다. 목소리가 주변 빌라  동에 가볍게 울려 퍼진다. 변한  있다면 그를 향한 우리의 온기가 식었다는 사실뿐이다. 그가, 그의 기합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한 것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약간의 언짢음을 참는 ' 공원 주변 거주인들이 그를 말릴 도의적 명분은 없었다. 하루는 참다못한 빌라 아래층 아줌마가 그에게 따졌다.


“제발 조용히 운동하세요!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어!” 곧장 노인이 답했다. “하루에 딱 한 번 공원에서 운동하는데 내 마음대로 못 하나!” 그의 말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렇게 둘은 몇 분간 설전을 이어갔다. 기어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낀 아래층 아줌마가 소리 질렀다 “그렇게 이상한 소리 내지 말고 그냥 나가 죽어! 이 영감탱이야!" 노인은 아줌마의 폭언에도 서슴지 않고 더 큰 기합소리로 계단운동을 마쳤다. 그날 이후 아래층 아줌마와 노인의 시비가 몇 차례 더 반복됐지만 그럴수록 그의 기합은 더욱 커졌다.


그의 말처럼 하루에 한 번 소음을 일으키는 게 정당하다면 하루에 한 번 무단횡단이나 하루에 한 번 노상방뇨도 소음죄와 마찬가지인 경범죄 처벌대상임에도 괜찮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의 주장은 뻔뻔하다. 고백하건대 언제부턴가 나는 아래층 아줌마의 격한 반응이 싫지 않았다. 1년 넘게 들은 그의 억지스런 기합소리에 지쳤기 때문이다. 목숨은 중요하다. 하지만 집요하면 질린다. 의지는 때로 집착이, 집착은 폐가 된다. 이것을 모를 리 없는 그가 오로지 자신의 건강회복에 몰두하여 타인에게 피로감을 준다는 사실은 궤변이다.

한편으로 낯설다. 심약한 기합소리를 동정하던 나의 감정은 그 소리가 공포스러워지자 적대감에 휩싸였다. 내겐 이타심을 상실한 피로감만 남았다. 어찌 보면 기합을 고집하는 노인과 신경질적인 아래층 아줌마 그리고 나, 셋은 이곳에 고립된 정서적 난민과 다를 바가 없다. 유입된 이방인의 게토와 원주민의 영토 사이 거리감이 좁혀질수록 원주민이라 주장하는 자들의 관용은 스스로 빈곤한 심리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아래층 아줌마는  이상 노인과 언쟁을 벌이지 않는다. 고성과 욕설이 사라졌지만 그의 기합은 변함이 없다. 그는 재활에 성공한  보인다. 인간은 '약간의 언짢음을 참는 ' 정도는 쉽게 타성에 젖는다. 더 이상 누구도 그에게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최근 그의 기합소리가 조금 약해졌다. 묘한 걱정과 경계심이 교차한다. 나는 이제 노인을 응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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