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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쓴귤 Jul 19. 2023

오늘도 운동하기 싫다

1. 아니, 그렇게 많이 먹지 않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일본이 지배하는 땅에서는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며 꼿꼿이 서서 세수를 했다던가. 그래서 가슴팍과 소맷부리가 물투성이가 됐다고 한다.


허리가 아프고 나서 난 세수할 때마다 어린 시절 위인전에서 읽은 신채호 선생을 생각했다. 허리가 아프면 세면대에 슬쩍 몸을 기울여 두 손으로 세수를 할 수가 없다. 한 손을 세면대에 짚어 지지하지 않으면, 허리를 살짝 숙인다는 자세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손으로 세수하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이다. 덕분에 한동안 내 가슴팍과 소맷부리는 늘 젖어 있었다.


허리가 아프면 일상 생활 모두가 고통인데, 우선 재채기가 두렵다. 재채기가 나오면 몸 전체가 울리기 때문에, 몸의 중심인 허리에 큰 충격이 온다. 세수 이야기는 했고, 당연히 머리를 받아놓은 물에 담궈 헹굴 수가 없다. 걸을 때도 힘차게 걸을 수 없다. 포경 수술을 한 남자 아이처럼 어기적거리며 걷게 된다. 무엇보다 앉았다가 일어나기, 일어서 있다가 앉기가 무척 고통스럽고 오래 걸린다. 자칫 어떤 각도에 잘못 들어서게 되면 '읔!' 하고 화면 정지 상태가 되어 버린다.


똑바로 누워서 잘 수도 없고, 엎드려 잘 수도 없다. 모로 자는 것이 최선이다. 허리가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허리가 아프면 어떤 고통이 있는지 전혀 모른다. 그냥 미디어에서 갑자기 허리를 잡고 '읔' 하고 주저 앉는 그런 모습을 상상할 뿐이다. 나는 한참 내 허리 통증에 동정하던 친구가 갑자기 신호가 얼마 안 남았다며 '가자!' 하고 횡단보도를 뛰어서 건너던 순간을 아직 기억한다. 건너다 말고 뒤를 바라보던 '뭐해?' 하는 눈빛 또한. 


'아니... 못... 뛴...다고...'


생각해보면 이번 허리 통증이 유달리 심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분명히 '이번' 허리 통증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나는 아주 젊었을 때부터 주기적으로 허리가 아팠다. 제대로 운동을 해본 적 없는 몸답게 나는 정상 체중과 과체중을 부지런히 왔다 갔다 했는데, 몸무게가 80KG을 넘어가면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달의 고통 끝에 허리가 좀 덜 아프다 싶으면 몸무게가 줄어 있었다. 체중과 허리 통증과의 상관 관계는 뻔한 것이고, 그렇다면 평소에 자기 관리를 좀 잘해서 체중을 잘 유지하면 되지 않겠냐고 하겠고… 나도 '아, 그치! 그랬어야지! 그럼그럼!' 하고 백번 정도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있지만…


선생님, 저는 탄수화물과 단 게 너무 좋아요.


댓글로는 "그럼 그렇게 살다 죽어야지. 누가 칼 들고 탄산이랑 초콜릿 쳐먹으라 협박함?" 이런게 달리는 것이 요즘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 분위기인 것 같지만… 우리 그렇게 야박하게 굴지 말자. 나도 변명을 해보자면, 대신 나는 한국인의 소울푸드 치킨을 썩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1년에 1번 시켜 먹을까 말까다. 면요리를 좋아하지만, 쌀밥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하지만 한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주식은 여전히 쌀밥이지만) 내가 먹는 쌀밥의 양은 아주아주 적다. 빵을 좋아하지만, 과자는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 이 역시 잘 사먹지 않는다. 나도 식단 일기를 써본 적이 있는데, 사실 내가 하루에 먹는 칼로리 양은 오히려 평범한 성인 남성보다 좀 적은 편이다. 무엇보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왠지 변명할수록 구차해지는 느낌인데, 아무거나 쳐묵쳐묵하다가 더이상 관리가 어려워진 몸을 이끌고 하소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넘어가자.


그러나 내 주위 사람들은 내 체중보다 운동이 문제라고 수 년 전부터 얘기하던 터였다. 지나치게 운동을 하지 않는 나의 생활과 스트레칭의 중요성 등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병원에서 힘들게 검사를 받으며 놀라워 했던 내 걸음걸이의 문제점도 지적해주는 사람이 이미 있었다! 내가 흘려 들었을 뿐이었다.


마침 병원에서 권해주는 것에도 운동 치료가 속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병원에서 제안한 70만원의 깔창 한 족, 도수 치료와 운동 치료를 겸한 20회 120만원 세트! 


중에서,


깔창은 사지 않기로 했고, 도수 치료와 운동 치료는 우선 10회만 결제했다. 이것이 바로 중도다!


중간치라면 중간치고, 애매하다면 애매한 이런 결정을 한 것은 일단 미심쩍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내어준 약과 맞은 주사는 별 효과가 없었다. 깔창은 비슷한 처방으로 이미 얼마간의 돈을 주고 의료용 깔창을 신어본 지인이 있었는데 굳이 할 필요가 있겠냐는 조언을 받았다(그 지인의 깔창은 10만원 언저리였는데, 내 깔창은 왜 70만원이었을까?). 도수 치료에 대해서도 나는 물리 치료와 마찬가지로 대증 치료에 가깝다는 인상을 갖고 있다. 오해는 없기를 바란다. 나는 물리 치료나 도수 치료가 훌륭한 치료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가진 자원과 그것으로 뽑아낼 한계 효용을 생각할 때 도수 치료가 나의 허리 문제를 근원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게 된다면, 그것은 마법의 안수 기도겠지. 하지만 운동 치료는 받고 싶었다. 운동과 담을 쌓은 몸이지만, 운동을 불신하진 않는다. 하면 좋겠지. 하지만 하기 싫을 뿐이다.


그러니 운동할 강력한 계기를 만들 수도 있고, 운동법을 배울 수도 있으니 운동 치료는 결제하자는 의미에서 10회만 결제한 나의 아주 합리적이고, 천재적이며, 굉장히 똘똘한…


선택은 바보 같았다.


- 이 글은 수영일기가 맞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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