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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쓴귤 Aug 25. 2023

나도 운동을 한다 2

5. 운동한 이야기를 쓰려니까 어색하다(2)

달리기는 순조로웠다.


어떻게 허리 질환 환자가 달리기를 하냐고 물으실 수 있는데, 몇 차례 설명했지만 내 허리는 걷는 데는 아주 크게 문제가 없었다. 물론 장시간 걸을 수는 없었고, 빠르게 걸을 수는 없었다. 


걸을 수가 있다면 달릴 수도 있다.


물론 그 속도는 걷는 속도나 크게 다를게 없다. 그리고 허리에 아주 많은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달리는 폼을 유지하는 것이다.


달리는 폼을 풀어버린다면, 그러니까 달리다가 힘들다고 걷기 시작하는 것은 그날 달리기는 끝이 난다는 뜻이다. 여전히 달려야만 하는 타임에 걷기 시작하면, 그 타임에는 어지간한 결심이 아니라면 다시 달리기는 어렵다. '런데이' 어플은 달리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는 어플이지만, 정해진 달리는 시간, 걷는 시간을 준수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건 내 마음이 어딘가 꺾였다는 뜻이다. 유명 코미디언이 중요한 것은 꺾여도 계속 하는 거라고 말했다지만, 그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중도 포기'는 뜨겁게 달군 솥에 찬물을 끼얹은 것과 비슷하다. 한번 온도가 내려가면 다시 불을 붙이는게 어렵다.


그래서 나는 아주 열심히 달리는 폼을 유지한 채 걷는 속도나 다를 바 없는 속도로 꾸준히 달리기를 해나갔다. 속도가 느리니 허리가 아픈 것도 적다. 숨이 차는 것도 덜하다. 운동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큰 나에게는 제격이었다. 처음부터 너무 힘이 들면 안 된다. 며칠은 열심히 할 수 있겠지만, 너무 힘이 들면 몸과 마음이 고달픈 날엔 아예 밖에 나갈 엄두를 내지 않게 된다. 운동 효과가 특별히 없어도 좋았다. 그냥 기분 좋은 정도로만 땀이 나면 그만이었다. 가뜩이나 운동하기 싫어하는데, 운동 자체에 대한 부담을 크게 짊어지고 싶진 않았다.


나는 별로 힘들지 않은 달리기는 잘할 수 있었다.


1분씩 5번을 달렸고, 1분 30초씩 4번을 달렸고, 2분을…, 2분 30초를… 그리고 3분, 4분을 달렸다. 하다보면 느는 것이 달리기였다. 아무리 천천히 달린다고 해도 아예 숨이 안 차는 것은 아니다. 달리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니 숨이 아주 여유로워질 틈은 없었다. 하지만 늘어나는 시간이 나도 운동을 하면 늘긴 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가, 나도, 이런 나도 운동을 하면 남들만큼은 아니어도 늘긴 는다.


생각해 보면, 내가 운동을 그렇게 하기 싫어했던 것은 학창 시절의 체육 시간 때문이 컸던 것 같다. 턱걸이나 윗몸일으키기처럼 갯수로 바로 표시되는 종목이 꼭 아니더라도, 축구든, 농구든, 옆구르기든, 뜀틀이든 체육 시간에 하는 어떠한 운동이나 스포츠도 남들과의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내 서투른 모습이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아이들은 내가 철봉에 매달리다 떨어지면 와- 하고 웃는다. 그것이 딱히 악의가 있는 조롱은 아닐지라도, 그 순간에 사람은 한없이 움추리게 된다. 그럼 남들 안 볼 때 연습해서 잘하면 되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일은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움추린 사람은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 쉽지 않다. 나는 남들보다 책을 더 빨리 읽을 수도 있고, 읽은 책을 더 잘 기억할 수도 있었지만 남들보다 빨리 달리거나, 남들보다 더 오래 철봉에 매달릴 수는 없었고, 그 방법도 잘 몰랐다. 체육 교사가 모든 아이들의 부족한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 봐주는 것도 아니고, 줄 서서 40~50분에 서너번 돌아오는 반복 연습만으로는 뭔가를 제대로 배우기 부족했다. 나는 움추러 들었고, '운동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스스로 찍어버렸다. 운동에 노력을 하지 않게 되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즐겁지 않게 되었다. 처음부터 남들보다 뒤에 서 있었는데, 그 자리가 점점 더 뒤로 가게 되었다.


남들보다 30년이 늦었다.


하지만 나도 간신히 스타트 라인에 섰다. 남들과 비교할 필요 없는 자리였다. 서툴러도 상관 없었다. 비웃을 사람은 없었다. 혼자서 하는 거니까.


혼자서 하는 운동에도 당연히 단점이 있다. 같이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결심이 약해졌을 때 격려할 동료가 없다는 뜻이다. 운동 능력의 확장에도 페이스 메이커가 있다면 도움이 된다. 하지만 당시 내게 필요한 것은 동료가 아니라 나도 할 수 있다는 자각이었고, 그것은 동료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 혼자서 하는 경험이었다.


달리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달리는 거리도 늘어났다. 처음에는 1분씩 달리기와 걷기를 반복한 끝에 총 걷고 달린 거리가 2km 남짓이었던가. 어느덧 그 거리는 3km를 넘어 있었다. 곧 4km 가 가까워졌다. 두 배가 늘어난 것이다.


그 결과 심폐지구력이 좋아졌다.

그리고 체중이 줄었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아니었다. 체중도 1~2kg 남짓이었다. 이정도면 체내 수분의 무게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하지만 모든 지표가 다 긍정적인 쪽으로 가고 있다는 그 방향이 중요했다.


핑계를 대고 달리기를 쉬는 일은 없었다. 아마도 발전하고 있다는, 나아지고 있다는 그 방향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에 달리는 시간이 5분을 넘기 시작하자 그것은 쉽지 않았다.


우선 5분은 꽤 긴 시간이었다. 숨이 찬 것도 찬 것이지만, 다리가 조금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하체 근육이라고 제대로 된 것이 달려 있을 리가 없었다. 단련해 보지 않은 내 다리 근육은 연약하고, 낭창낭창한 것이었다. 다리가 떨리는 것은 물론 종아리 근육이 당기기도 했다.


그리고 5분이 넘어서자 달리는 시간이 조금 지루해졌다. 야외를 달리는 것이라 그나마 조금 나았다. 하지만 녹음된 트레이너의 응원이나 음악 소리만으로는 그 지루함을 견디기 힘들었다. 5분이 넘으면 몸은 관성적으로 달리는데, 딴 생각이 나기 시작하고, 거기에 숨까지 차기 시작하면 '중도 포기'의 달콤한 유혹이 스물스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아, 그래도 어제만큼은 달렸잖아. 오늘은 이제 그만해.


이 목소리를 떨쳐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열심히 해결책을 강구해 보았다. 하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다. 지루함을 참고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달리기 준비를 하려다 생각을 해보았다.


지루해졌다는건 여유가 생긴거 아냐?


힘이 들어 죽겠으면, 그 생각밖에 나지 않을 것이다. 지루해질 틈이 있다는건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 아닐까? 내가 운동을 하다가 여유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을 하니, 그것도 약간은 신통한 노릇이었다. 그 신통방통함을 바탕으로 조금 더 힘을 내어 나는 7분 대까지 달릴 수 있게 되었다.


한번에 5km는 달리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한달 남짓이 걸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게 부상이 찾아온 것이다. 겨우 한달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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