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디자이너 May 15. 2024

내게 선을 긋게 한 남자

마음을 치유하는 법을 알게 해 준 사람


이십 대의 나는 상하이에서 사랑을 배웠다.

상하이에서 중국어를 반년 배우고 그를 따라서 청두(成都)로 갔다. 그곳에서 중국어를 배웠다.

나에게 동갑의 연애는 맞지 않았고, 찐한 연애를 했지만 서툰 사랑은 쉽게 끝이 나버렸다. 


끝나고도 끝이 나지 않았던 연애. 그것에서 나는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을 알게 되었다.

그와 헤어진 후 슬펐지만 정말 슬픈 것 같지 않았고, 마음이 아프다는 표현도 내 감정을 표현하기엔 그 단어들의 의미가 짧게만 느껴졌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궁금해졌다.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 건지. 보이지 않는 감정들을 그려보고 싶어졌다.

단순하게 몇 장 그려보기 시작했는데, 신기하게 마음이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 이런 문구를 봤다.


“세제나 차 냄새만으로도 어린 시절의 기억이 풀려나오듯이, 선 몇 개의 각도에서 문화 전체가 튀어나올 수 있다’

_ 알랭 드 보통 ‘행복의 건축’



이거다!!!!

선으로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다니. 매일 퇴근을 하고 그날에 있던 특정 사건이나 마음에 담아있던 단어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검정펜으로 손바닥만 한 종이에. 검정펜에서 컬러 펜으로 A4 종이로 전지 사이즈의 종이로 옮겨가며 그렸다.



그가 떠난 자리를 드로잉으로 채워나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또 그렸다. 그렇게 조금씩 다시 나의 자리로 조금씩 돌아올 수 있었다.


청두에서 상하이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울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다시 시작될 혼자만의 생활을 생각하고 있었다.


상하이에서 다시 시작된 홀로서기.

헤어졌어도 그 시작을 응원해 줬던 남자.

새로 취직을 하고 첫 출근 날 응원의 문자를 보냈던 남자.

‘You’ve got a talent’


마흔이 넘은 지금의 그가 가끔은 궁금하다. 결혼은 했는지. 아기는 있는지.

한때는 나의 삶에서 가장 소중했던 남자가 이제는 그저 지구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을 남자로 변했지만,

나와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그 사람이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나의 이십 대. 나의 상하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려고 했고, 그려보고 싶었다. 호기심이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었다.




이전 01화 나의 사랑 나의 상하이_사랑 편 프롤로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